"판사 아저씨, 나를 주기려(죽이려) 했던 아저씨를 많이 많이 혼내주셔야 해요. 그 아저씨가 나를 또 대리고(데리고) 갈가봐(갈까봐) 무서워요."
집에서 잠자다 이불에 싸인 채 납치돼 성폭행을 당한 어린이 A(8·초등1)양이 성폭행 범을 엄벌해달라며 재판부에 보낸 편지다. A양의 어머니는 흐느끼며 편지를 읽었고 법정은 숙연해졌다.
나주 성폭행 사건 범인 고종석(24)에 대한 결심공판이 10일 오전 광주지법 제2형사부(부장판사 이상현)에서 열렸다. A양은 공판을 방청하러 가는 어머니의 손에 수첩을 찢어 앞뒤로 빼곡히 쓴 편지 한 장을 쥐어줬다.
'제판사(판사) 아저씨께'라고 수신인을 적은 A양은 "저는 OO이예요. 엄마가 나쁜 아저씨 혼내주러 가신다 해서 제가 편지 썼어요"라고 밝혔다.
이어지는 내용은 A양이 사건 후 겪은 고통과 무서움을 짐작케 한다. A양은 짧은 편지에 "많이 혼내주세요"라는 말을 세 차례나 반복했다.
"판사 아저씨 나를 주기려(죽이려) 했던 아저씨를 판사 아저씨가 많이 많이 혼내 주셔야 해요. 그 아저씨가 또 나와서 우리 집에 와서 나를 또 대리고(데리고) 갈가봐(갈까봐) 무서워요. 그 아저씨가 또 대리고(데리고) 가지 못하게 많이 많이 혼내주세요. 제가 말한 그대로 엄마께 아저씨한테 욕편지 보내도 돼조(되죠). 제가 쓴 편지대로 소원 드러(들어) 주세요. 제판사 아저씨랑 엄마랑 가치(같이) 많이 많이 혼내주세요."
검찰의 요청으로 발언 기회를 얻은 A양 어머니는 울먹이며 편지를 읽어내려 간 뒤 딸의 상태를 전했다.
A양 어머니는 "법정에 온 이유는 아저씨가 (사회로) 절대 못 나왔으면 좋겠다는 아이의 바람을 전하기 위해서"라며 "곧 있으면 새 학기인데 학교 가기도 싫어하고 '엄마 뱃속으로 다시 넣어 달라'거나 '아저씨가 목 조르는 게 자꾸 생각난다'는 말도 한다"고 흐느꼈다.
그는 "고종석을 보면 심한 말을 해주고 때려주고 죽이고 싶은 마음에서 법정에 나왔는데 막상 얼굴을 보니 말이 나오지 않는다"고 기막힌 현실에 울분을 토했다.
검사도 눈물을 흘렸다. 광주지검 형사 2부 최영아 검사는 슬픔에 목이 멘 채 당시 상황 설명을 곁들여 구형 의견을 제시했다.
A양이 집에서 자다가 이불째 납치돼 성폭행당한 지난해 8월 30일 새벽은 태풍 덴빈이 상륙했으며 장소는 어두운 다리 밑 물가였다.
고씨는 목을 조른 뒤 A양이 숨진 줄 알고 현장을 떠났지만, A양은 의식을 회복하고도 세찬 비바람 속에서 몇 차례나 실신해가며 집으로 돌아가려다가 11시간 만에 구조됐다고 최 검사는 강조했다.
A양은 지금도 비가 오면 불안감을 호소하고 있다.
검찰은 살인까지 하려 한 고씨의 죄질과 수사 중에도 피해자의 상처에 무관심하고 다른 사람 이야기하듯 하는 반사회적 행태, 피해자와 그 가족이 겪은 심신의 고통 등을 고려해 사형을 구형했다.
고씨는 지난해 8월 30일 오전 1시 30분께 나주 한 상가형 주택에서 자고 있는 A양을 이불에 싼 채 납치해 인근 다리 밑에서 성폭행하고 목을 졸라 살해하려 한 혐의로 기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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