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시대-인사가 만사다]인사의 ‘五友歌’를 불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4일 03시 00분


총결산―이런 인재를 찾아라
①바위처럼 굳건 ②대쪽처럼 꼿꼿 ③달처럼 냉철 ④물처럼 소통 ⑤솔처럼 청렴

“인사권자여, 오우가(五友歌)를 불러라.”

동아일보는 국무총리부터 신설되는 국가안보실장까지 어떤 인물을 등용해야 하는지를 심층 취재한 ‘박근혜 정부-인사가 만사다’를 15회 연재했다.

해당 부처의 전임 수장들과 전·현직 고위 공무원, 그리고 학자들에게 물어본 결과 총리와 13개 장관(급)을 선정할 때 대통령이 참고해야 할 기준은 모두 67개였다. 이들 기준은 고산 윤선도(1587∼1671)의 시조 ‘오우가’에 빗대어 바위, 대나무, 달, 물, 소나무라는 5가지 키워드로 정리할 수 있다.

○ 바위처럼 외풍을 막아낼 사람

‘정치 외풍’을 소신과 강단을 갖고 바위처럼 견뎌내는 사람이 등용돼야 한다는 것이 첫 번째로 꼽혔다. 정치 외풍은 정부 여당, 정권의 주요 지지기반이 되는 지역세력, 정권 창출에 일정 역할을 한 조직 등을 들 수 있다. 이들 세력에서 불어오는 거센 압력과 청탁을 막아내 국민의 이익을 보호할 의지가 있어야 한다. 김황식 국무총리는 “(2010년 감사원장 재직 당시) 저축은행 감사에 들어갔더니 오만 군데서 압력이 들어왔다”라고 토로한 적이 있다. 이른바 ‘힘센’ 기관들의 외압을 이겨낼 강단이 있어야 이런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정권 덕에 자리에 오른 수장은 자신을 밀어준 세력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입증되고 있다. 김대중 정부 시절 특정 지역 출신이 국세청장을 비롯해 국세청 고위직을 차지한 적이 있다. 당시 국세청은 정권에 비판적인 언론사를 상대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벌였다. 공정거래위원장도 정권에 따라 역할과 태도가 바뀌다 보니 ‘불공정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이처럼 정권의 입맛에 따라 움직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국민을 위해 정권, 즉 자신을 임명한 대통령에게도 각을 세울 단호함을 가진, 바위 같은 인물을 찾아야 한다.

○ 대나무처럼 소신 있는 사람

더 높고 더 나은 자리로 가기 위해 지금의 자리를 징검다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곤란하다. 현직에 충실하지 않을 여지가 많기 때문이다. 정무직인 장관(급)이 다음에 어떤 일을 할지를 미리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수 있다.
미국에서도 장관은 ‘정치철새(political bird)’로 불리며 항상 다음을 생각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한다. 특히 평균 임기가 1년여에 불과한 우리나라에선 더욱 그러할지 모른다.

그러나 정치권력을 좇는 해바라기가 돼서는 곤란하다. 과거 일부 국방부 장관은 다음 자리로 가는 디딤돌로 현직을 이용해 ‘군의 정치 시녀화’ 현상을 초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치 외풍에 취약한 부처에는 현직을 정계 진출의 발판으로 삼으려는 수장이 있다는 게 거의 통설이다. 국가정보원처럼 국가안보와 관련된 중요한 정보를 다루는 곳에서 자신의 다음 자리를 위해 정보를 왜곡한다면 큰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대나무처럼 욕심내지 않고 꼿꼿하게 일에 매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 달처럼 냉철한 전략적 마인드 가진 사람

‘오우가’에서 윤선도는 달의 밝음과 과묵함을 강조했다. 먼저 밝음은 명징한 이성을 뜻한다. 냉철한 상황 판단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의 적절한 해법을 내놓을 수 있는 전략적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외교통상부 장관은 시시각각 변하는 대외환경 속에서 복잡한 현안을 일목요연하게 풀어 낼 역량을 갖춰야 하며, 국방부 장관은 국가 존립과 국익을 뒷받침할 국방정책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전략가여야 한다. 자신이 맡은 분야에 대한 해박한 전문성은 조직 장악의 필요조건이기도 하다.

과묵함은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는 없다’는 관점에서 해석된다. 대통령이 임명하는 총리 이하 장관(급)들은 대통령의 손발로서 대통령과 비전을 같이하고 정치적 신념을 같이할 수밖에 없다. 대통령실장의 경우 대통령을 대신해 때로는 욕을 먹을 각오가 돼 있는 ‘대(代)통령’이 되어야 한다. 또 대통령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 줄 수 있는 인물이 적합하다.

○ 물처럼 소통해 조직을 장악할 사람

물은 끊임없이 흐르면서 모든 것을 아우른다. 상선약수(上善若水·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다. 구성원을 압박하고 통제하기보다는 신념과 열정을 바쳐 일할 수 있도록 하는 개방적인 리더십, 외압에 맞서기 위해 청와대와 적절한 긴장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정치력이 필요하다. 조직에 대한 이해력과 전문성을 바탕으로 조직 구성원과 소통할 수 있는 능력, 중요한 판단의 순간에 맞닥뜨렸을 때 결단할 수 있는 힘도 갖춰야 한다.

그러나 미국의 정치학자 휴 헤클로가 말한 것처럼 “장관은 대통령과 공무원(조직 구성원)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 사이에서 물처럼 유연하게 조정을 잘하는 것은 장관의 몫이다. 박천오 명지대 행정학과 교수는 “전문성만을 갖춘 교수들이, 그것도 얼마 안 되어 바뀌는 현실 속에서는 제대로 조직을 장악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지적했다.

○ 소나무처럼 청렴,자신에게 엄격한 사람

도덕성은 필수불가결한 조건이다. 과거 정부들의 여러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도 야당의 도덕성 검증을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운계약서 작성이나 위장전입이 드러난 장관 내정자가 조직에서 신망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소나무처럼 겨울 눈 속에서도 홀로 푸를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춘다면 국민이나 조직 구성원에게 주는 롤모델로서의 이미지는 상당하다.

그런 도덕성의 기준은 어떻게 보면 현실적이지 않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더욱 중요하다. 조직원의 신망을 받기 위한 기본이다. 특히 감사원장같이 ‘남의 눈의 사소한 티끌’까지도 잡아내야 하는 경우 자신이 도덕성과 청렴함을 갖추지 못한다면 조직 통솔은 여의치 않다. 따라서 청렴성에 대한 엄격함은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남에게 부드럽고 자신에게 엄격함)’의 각오와 용기가 없으면 쉽게 얻기 어렵다.

○ 어렵고도 어려운 오우의 잣대

오우는 어쩌면 이상이다. 현실에서 오우를 다 갖춘 인물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은 “사람을 찾는 게 정말 만만치 않은 일”이라고 말했다. 국회의 인사검증 절차가 강화되고, 인터넷 등을 통한 시민들의 ‘자율적 검증’까지 겹쳐 능력 있는 사람 중 검증을 무난하게 통과할 수 있는 사람을 찾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지난 5년의 교훈을 말하자면 대충 ‘이런 정도의 사람이면 되겠지’ 하는 식으로는 직책별 맞춤형 인재를 찾기 어렵다는 것”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과거 정부에서도 마찬가지다. 김대중 정부 시절 인사보좌관 역할까지 맡은 대통령법무비서관을 했던 박주선 의원(무소속)은 “능력, 자질, 청렴, 개혁성을 갖춘 인사를 적소에 배치한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지만 그런 여건을 조화롭게 갖춘 인물을 찾기는 힘들었다”라고 말했다.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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