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이동흡 헌재소장 후보자 스스로 결단할 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19일 03시 00분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반대 기류가 야권을 넘어 보수적 시민단체까지 번져가고 있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어제 “언급하기도 민망한 제보가 점입가경”이라며 “이 후보자를 청문회장에 세워도 되는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묻고 싶다”고 박 당선인까지 끌어들였다. 애국국민운동대연합 등 보수단체들은 청와대 앞에서 “국민의 마지막 신문고인 헌재소장 후보자가 국민 정서를 거스른 판결과 부조리로 점철돼 있다면 앞으로 누가 헌재 판결을 믿겠는가”라며 이 후보자의 자진 사퇴를 요구했다.

인사청문특위 위원인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이 “지금 의혹이 제기되고 있는 것은 상당히 치졸한 문제들”이라고 말했듯이 고구마 줄거리처럼 계속 터져 나오는 이 후보자 관련 의혹들은 ‘결정타’는 아닐지라도 국민 정서를 거스르는 내용이 많다. 특히 헌재 재판관으로 재직할 때 주말과 공휴일에 경기 성남시의 집 근처 음식점에서 45차례 400여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쓴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업무추진비는 공휴일과 주말에는 사용이 제한되며 관할 근무지를 벗어나서도 쓸 수 없다. 이 후보자 측은 “주말에 헌법연구관들과 등산 등 여가 활동을 하면서 쓴 것”이라고 했지만 구차한 변명처럼 들린다. 가족과 식사를 하고 업무추진비 카드를 써서 세금을 낭비했다면 공인 의식이 없는 사람이다.

청와대는 “헌재 소장은 헌법적 가치를 지킨다는 차원에서 보수적인 철학이 필요하다”며 이 후보자 인선에 문제가 없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이 후보자로 인해 자칫 ‘보수적 인사는 반칙과 특권을 아무렇지 않게 여기는 부도덕한 집단’이라는 잘못된 선입견이 확산되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더욱이 이 후보자가 공과 사를 구분하지 못하고, 특권의식에 갇힌 듯한 언행으로 헌재 안에서도 신망을 얻지 못했다니 헌법적 가치를 수호하고 헌재를 통솔할 헌재소장으로 적절한지 의문이다.

이 후보자는 사퇴하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으나 21, 22일 예정된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해 낙마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의혹이 명쾌하게 해소되지 않으면 새 정부에도 부담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인사청문특위 민주당 서영교 의원은 어제 “이 후보자가 새누리당 청문위원에게 청문회 질문 내용을 사전에 조율하는 듯한 문건을 작성해 보냈다”고 주장했다. 이 말이 사실일 경우 새누리당이 ‘부실 청문회’의 책임을 뒤집어쓸 수도 있다. 이 후보자가 스스로 결단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이동흡#헌법재판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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