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재입북 기구한 삶뒤엔 ‘두얼굴 브로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6일 03시 00분


24일 평양회견 김광호씨 사례로 본 ‘탈북브로커의 도움과 횡포’

북한 조선중앙TV는 24일 밤 한국에 정착했다 재(再)입북한 탈북자 4명의 기자회견을 방송했다. 재입북 탈북자의 기자회견은 지난해 6월 박정숙 씨(여) 이후 벌써 3번째다. 탈북자 사회에서는 앞으로도 비슷한 사건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번에 재입북한 4명 중 3명은 2010년 4월 전남 목포시에 정착한 김광호(사진)-김옥실 씨 부부와 10개월 된 딸이다. 이들은 지난해 10월 중국으로 여행을 간다며 출국한 뒤 소식이 사라졌다. 남한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딸까지 낳아 행복한 일만 있을 것 같던 이들이 2년 반 만에 목숨을 걸고 찾아온 ‘자유의 품’을 떠난 이유는 뭘까.

○ 정착금부터 브로커에게 빼앗겨

2010년 4월 탈북자 정착 지원기관인 하나원에서 3개월간 정착 교육을 받고 나선 김 씨 부부 앞에 기다렸다는 듯 나타난 건 중국에서 이들을 데려온 소위 ‘탈북 브로커’. 그는 중국에서 약속한 대로 1인당 250만 원씩 모두 500만 원을 지불할 것을 요구했다. 함께 온 탈북자들은 순순히 250만 원씩 줬다. 중국에서 쓴 계약서엔 하나원을 나올 때는 250만 원, 지불을 늦추면 최대 400만 원까지 내겠다고 돼 있었다.

탈북자들은 하나원을 나올 때 정부에서 1000만 원이 조금 넘는 임대주택 보증금과 300만 원의 정착금을 받는다. 보증금은 아파트 관리사무소에 내기 때문에 300만 원이 사실상 탈북자들이 쥐고 사회에 나오는 재산의 전부다. 이 중 브로커에게 250만 원을 떼어 주면 50만 원밖에 남지 않는다. 여기에 매달 기초생활수급자로 받는 30만 원을 보태 살아 나가야 한다. 직업을 구하기도 어려운 탈북자들에겐 혹독한 조건이다. 하지만 탈북자 대부분이 이렇게 시작한다. 브로커 없이 홀로 남한에 오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김 씨는 다른 탈북자와 달리 200만 원씩만 주고 나머지는 거부했다. 하지만 브로커는 나머지도 달라며 재판을 걸었고 법원은 지불이 늦어졌으니 계약서대로 1인당 400만 원씩 주라고 판결했다. 김 씨 부부는 항소했지만 브로커가 김 씨의 주택보증금마저 차압하려 하자 결국 남한을 떠났다. 목숨을 걸고 ‘자유의 품’을 찾아왔지만 결국 ‘자유’를 포기한 셈이다.

○ 브로커는 탈북 도우미? 사기꾼?

김 씨는 얼핏 보면 피해자로 보이지만 브로커를 가해자라고만 보기 어려운 게 탈북자 문제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한국 정부가 탈북자 입국을 전혀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 탈북자들은 이런 브로커의 도움을 받지 않을 수 없다. 브로커가 탈북자를 입국시키는 데는 돈이 든다. 중국에서 숨겨 주고 먹여 줘야 하고, 중국 대륙을 횡단하는 데 드는 교통비며 심지어 제3국에서는 벌금도 내야 한다. 운이 나빠 체포되면 감옥에 가야 하고, 김 씨처럼 한국에 들어온 뒤 약속한 돈을 안 주고 잠적하면 끊임없이 찾아내 독촉해야 한다.

▼ 北, 탈북자 회유 전문 공작기관까지 만들어 ▼

이런 브로커가 없다면 90% 이상의 탈북자가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다. 브로커들은 탈북자에게서 받은 돈을 밑천으로 또 다른 탈북자들을 데려오고 생계를 유지한다. 그래서 “탈북 브로커는 필요악”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문제는 비용이 적정한가이다. 이동수단과 통로가 달라 일률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100만∼250만 원 선이라는 말이 많다. 250만 원을 넘기면 탈북자 사회에서 ‘악덕 브로커’로 분류된다. 비록 극소수이긴 하지만 300만∼400만 원을 요구하는 브로커도 있다. 심지어 중국에서 계약서를 썼다는 이유로 거액을 요구한 후 받지 못하면 여성의 경우 성폭행까지 하는 브로커도 있다고 한다.

탈북자는 대부분 이 비용을 지불하고 매우 어렵게 정착생활에 들어간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기가 지나면 점차 자리를 잡는다.

○ 재입북은 절망 끝 결단 아닌 새로운 희망?

김 씨 부부가 북한으로 돌아간 것은 단순히 브로커의 횡포 때문만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 김 씨는 그 나름대로 영악한 사람이다. 그는 과거 수차례 중국을 넘나들며 밀수를 했다. 이 때문에 북한에서 체포돼 처벌받기 직전 약혼녀를 데리고 탈출했다.

그는 북한에 있을 때 소를 훔치기도 했고, 중국에서 지프를 훔쳐 팔아먹기도 했다고 지인들에게 자랑삼아 이야기했다. 소도둑은 북한에서 사형까지 당할 수 있는 중범죄다. 탈북의 그 위험한 순간에 중국에서 약혼녀와 방을 함께 쓸 수 있게 해주지 않는다고 칼을 들고 위협까지 했다고 한다. 탈북 과정에서 잠잘 때 방은 보통 남녀로 구분해 사용하게 한다. 이 때문에 지인들은 그의 이름만 들어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김 씨 부부는 공식 결혼은 하지 않았기 때문에 남한에서 임대주택을 각각 받았다. 김옥실 씨는 곧 임대주택을 반환하고 임대보증금을 받아 김광호 씨와 살림을 꾸렸다. 이후 이들은 2년 동안 여기저기서 돈을 벌었다. 보통 재입북하는 탈북자는 임대주택은 국가에 반환하고 임대보증금을 되찾은 뒤 시중은행 및 지인 등에게서 최대한 돈을 빌려 나간다. 김 씨도 그랬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그렇더라도 남한 생활 2년이면 최소 3000만 원 안팎의 재산을 모았을 것으로 추측된다.

북한에서 3000만 원은 엄청난 돈이다. 50만 원이면 4인 가족이 어렵게나마 1년을 먹고살 수 있는 북한 실정을 감안하면 이들은 북한에서 평생 먹고살 수 있는 돈을 수중에 넣었을 것으로 보인다.

○ 북한의 새로운 탈북자 정책

과거엔 탈북자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려움에 봉착해도 그냥 버티는 수밖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북한에 돌아가면 처벌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북한은 탈북자를 회유해 재입북시키는 수법으로 남쪽으로 간 탈북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이들이 돌아와 남한 사회를 비난하면 남쪽에 대한 주민들의 환상을 막을 수 있고 탈북도 그만큼 줄일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최근엔 이를 위한 전문 공작부서까지 생겨나 북한의 가족을 동원해 남한의 탈북자를 회유하고 있다. 한 탈북자는 “김 씨 부부를 회유한 탈북 여성이 있지만 수사 당국이 증거가 없어 체포하지 못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탈북자 사회에선 앞으로 이런 재입북자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 탈북자 재입북 북한 정권에 이롭지만은 않아

하지만 탈북자들이 계속 돌아오면 북한으로서도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박정숙 씨 귀환 때도 말로는 남쪽에서 온갖 핍박을 다 받았다고 기자회견을 했지만 정작 주민들은 “까무잡잡한 여자가 5년 만에 귀부인이 돼 나타났다”고 쑥덕댔다. 거기에 입국한 탈북자들이 몰래 숨겨 온 돈으로 잘살게 되면 주민 여론이 문제다. 그렇다고 처벌하면 용서를 강조했던 당의 정책에 큰 흠집이 생긴다.

대북 소식통에 따르면 이 때문에 최근 북한 당국에선 새로 회의를 열고 탈북자 정책의 방향을 수정했다고 한다. 북한으로 되돌아오게 하지 말고, 어려움에 빠진 탈북자를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로 꾀어 보낸다는 것이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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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탈북자#재입북#브로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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