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원 훌쩍 넘는 화장품 여중고생들에 유행… 新등골브레이커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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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입품 쓰면 ‘엘프’… 저가품 쓰면 ‘오크’

‘밥을 안 먹는다. 어쩌다 눈이 마주치면 고개를 휙 돌린다. 말수도 줄었다. 개학이 코앞인데, 고2면 정말 중요한 시점인데. 처음엔 단호하게 안 된다고 했다. 이젠 마음이 흔들린다. 그냥 기분 좋게 사주고 말까. 아니야, 한 번 사주면 버릇되는데. 벌써 일주일째 현재진행형이다. 아이와의 냉전, 그리고 내 마음속 고민이….’

서울 강남구 논현동에 사는 주부 심지연(가명·44) 씨가 고교생 딸과 전쟁을 치르는 심정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화장품 때문이다. 고교생이 되기 전까진 로션도 잘 안 바르던 딸이 최근 화장품에 푹 빠졌다. 정확히는 수입 명품 화장품이다.

10만 원이 훌쩍 넘는 화장품을 사달라고 매일 조른다. 친구들은 다 쓴다면서. 자기만 안 쓰면 ‘쪽팔려서’ 공부에 집중도 못할 것 같다면서. 심 씨는 “강남에 산다지만 소득은 중산층이다. 맞벌이도 아니다. 그런데 안 사주자니 아이 기가 죽을 것 같고 사주자니 뱁새가 황새 따라가는 것 같아 마음이 무겁다”며 한숨을 쉬었다.

화장품이 ‘신(新)등골브레이커’로 떠올랐다. 등골브레이커란 부모의 등골을 휘게 만들 만큼 비싸다는 뜻이다. 수십만 원을 호가하는 ‘노스페이스’ 점퍼가 10대 사이에서 유행하면서 나온 말이다.

여중생, 여고생 사이에선 최근 서울 강남 일대를 중심으로 수입 화장품을 쓰는 게 유행이다. 서울 서초구에 사는 정모 양(17)은 “화장품이 교실 내 서열을 결정한다”고 했다. 에스티로더, SKⅡ 같은 고가의 수입 화장품을 쓰면 엘프(요정), 국산 고가 화장품을 쓰면 휴먼(인간), 젊은층이 타깃인 저렴한 화장품을 쓰면 오크(괴물)로 불린다고 한다.

포털사이트에선 ‘명품 기초화장품을 써봤더니 끈적거리지도 않고 좋다’ 같은 10대의 후기를 찾는 게 어렵지 않다. 일부 학생 사이에선 화장품을 넣는 작은 가방인 파우치가 명품인지도 관심사다. 강원 속초에서 서울로 쇼핑 왔다는 김영임 양(16)은 “화장품 사느라 아르바이트하는 친구도 있다”고 전했다.

동아일보는 서울 강남구와 송파구에 거주하는, 올해 고교에 입학하는 딸을 둔 어머니 15명을 대상으로 입학 준비 비용을 물었다. 평균 비용은 220여만 원. 교복이 보통 50만 원을 넘고 체육복은 평균 7만 원 선. 여기에 점퍼 가방 신발 화장품을 합치면 200만 원이 훌쩍 넘었다.

특히 패딩점퍼, 가방, 신발은 ‘등골브레이커 3종 세트’로 꼽혔다. 다소 주춤거리는 분위기지만 노스페이스의 아성은 여전하다. 이런 가운데 비슷한 가격대 패딩에 대한 수요까지 늘면서 오히려 학부모 부담이 더 커졌다.

전자기기는 최근 몇 년 사이 등골브레이커 상위권에 자리 잡은 품목이 됐다. 지난해 대학수학능력시험 직후엔 자녀 이름을 새긴 태블릿PC가 졸업 및 입학 선물로 불티나게 팔렸다.

허태균 고려대 교수(심리학과)는 “요즘 10대는 소비에 무감각하고 모방심리가 강하다. 빨리 끓었다 식는 성향까지 더해져 등골브레이커들이 기승을 부린다”고 분석했다. 중학생 딸을 둔 주부 A 씨는 “아이들이 결국 명품에 집착하는 부모 행태를 따라 하는 것”이라면서 “내 아이만큼은 다르게 포장하고 싶다는 욕망도 문제”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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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진우 기자 niceshin@donga.com
김담덕 인턴기자 연세대 건축학과 4학년
#화장품#등골브레이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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