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후 1시 반. 도쿄의 기온은 영상 11도까지 올랐지만 쓰치야 노조무 씨는 “머리가 깨질 것 같다”고 했다. “(소녀시대 신곡) ‘아이 갓 어 보이’가 한국에서는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있습니까?” 그는 “이 복잡다단한 곡을 일본 대중에게 어떻게 소개할지가 요즘 최대의 관심사”라고 말했다.
루이뷔통 저팬과 에이벡스 트랙스(일본 최대 음반사)가 공존하는 ‘도쿄의 청담동’ 아오야마에 있는 SM엔터테인먼트 저팬 사옥 3층 회의실은 무균 실험실처럼 하얬다. 쓰치야 씨가 명함을 내밀었다. ‘SM엔터테인먼트 저팬 CBO(Chief Branding Officer·최고 브랜딩 책임자)’. 생소한 직함. 카메라를 들이대자 그가 고개를 돌린다. “저는… 우라카타(うらかた·裏方·‘뒤에서 일하는 사람’을 뜻하는 일본어)인데….”
‘우라카타.’ 도쿄에서 만난 프로듀서와 음악 관계자들은 대개 이렇게 자칭했다. 언론 노출을 꺼렸다. 그러나 가려진 그들은 일본 음악시장의 전위(前衛)다. 세계적 스타도 성공을 담보하기 힘든 독특한 소비 취향과 산업구조를 지닌 일본시장을 뚫으려면 이들의 ‘드릴’이 필수다. 쓰치야 씨는 큰 드릴이다.
그는 2010년부터 ‘소녀시대 일본판’을 조립하고 있다. 2010년 9월 일본 데뷔 싱글 ‘지니’(한국명 ‘소원을 말해봐’)와 10월 두 번째 싱글 ‘지’의 폭발적 인기로 소녀시대는 일본 오리콘 차트의 해외 여가수 진출사(史)를 새로 썼다.
한국과 유럽 작곡가가 직접 쓴 가사는 춤 동작의 포인트와 악곡의 강세를 고려한 직관적인 것이어서 일본어 표현이 불가능해 보였다. 20년 이상 일본 시장의 중심에 있던 쓰치야 씨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일본어에는 가타카나라는, 외국어를 독음대로 표현하는 문자가 따로 있잖아요. ‘지’를 들리는 대로 가타카나로 적어서 능력 있는 일본 작사가들에게 뿌렸어요. ‘가사 의미에 집착 말고 한국어 발음을 살린 멋진 일본 어휘를 찾아 달라’고 덧붙였죠.”
수십 통의 e메일 답장이 쏟아졌다. 그는 원어 발음의 매력이 살면서 일본의 젊은 어휘가 담긴 것을 골랐고 수정을 거듭해 일본판 ‘지’를 완성했다. ‘런 데빌 런’의 일본어 버전까지 3연타석 홈런을 친 소녀시대에게 이듬해 현지 작곡가가 참여한 일본만을 위한 신곡 ‘미스터 택시’를 연결하기도 했다. 남성그룹 슈퍼주니어와 샤이니의 한국 히트곡도 일본어 버전으로 일본에 소개했다.
쓰치야 씨는 1998년 도시바 EMI 뮤직에 입사하며 음악 산업계에 들어섰다. 세 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고 사회과학을 전공한 그는 대학교 때 팝 밴드를 조직해 건반과 드럼을 연주하며 음악 활동을 했다. 수줍음이 많았던 그는 “무대에 서는 것보다 스태프가 적성에 맞다”고 생각했다. EMI에서 A&R(아티스트 발굴 계약 육성 담당) 프로듀서를 시작했다. 베테랑 연주자로서 편곡과 사운드 프로듀스에도 직접 관여했다. 일본 록의 대부 이마와노 기요시로와 그룹 드림스 컴 트루를 성공시킨 뒤 사내에 버진 레코드 저팬을 설립해 여가수 오니쓰카 지히로를 탄생시켜 밀리언셀러로 만들었다.
쓰치야 씨는 “일본 내 케이팝 붐은 2011년 절정 이후 안정기로 접어들었다”면서 “케이팝의 주 소비층이 장르적 마니아로 축소되면서 한국 가수 곡의 일본어 버전보다 원어(한국어) 버전이 더 선호되기도 한다”고 했다.
그러나 그는 또 한 번 일본 대중 전체를 사로잡을 강력한 케이팝 폭발을 준비하고 있다.
“저 같은 우라카타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시장에 절정을 만들지 않고 끊임없이 절정을 향해 갈 수 있느냐입니다. 케이팝의 경쟁력은 세계적이에요. 그들의 독자성은 일본 시장을 앞으로 수십 년간 위협할 겁니다. SM과 케이팝을 만난 건 제 25년 음악 생활 최대의 행운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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