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서울 송파구 풍납동 풍납토성. 길 건너 현대아산병원이 보이는 남쪽 토성 터는 비까지 추적추적 내리며 스산하기 짝이 없었다. 드문드문 지저분한 쓰레기더미가 보이긴 했지만 땅은 평지처럼 다져져 있을 뿐 별 다른 특색이 없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리자 현장에 동행한 서울 송파구 직원은 한숨을 푹 쉬며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 끝까지 평평하게 깔려 있는 게 다 쓰레기라는 거 아닙니까. 사람 키 두 배가 넘게 폐기물이 잔뜩 깔려 있어서 손을 대려야 댈 수가 없는 지경이에요.”
관계자들에 따르면 풍납토성의 쓰레기더미가 드러난 것은 문화재청 산하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지난해 4월 해자(垓子·성 주위에 둘러 판 못) 지역 발굴에 착수하면서였다. 송파구의 위탁 의뢰를 받은 연구소가 현장을 파면 팔수록 쓰레기가 나왔다. 고철자재는 물론이고 썩어 문드러진 폐기물까지 나와 초기에는 악취로 숨을 쉴 수가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결국 문화재청과 송파구는 발굴을 중단하고 대책회의 끝에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문제는 폐기물이 정확히 얼마나 묻혀 있는지 현재까지도 가늠이 어렵다는 점이다. 지난해 연구소가 2개월가량 제거작업에 매달렸지만 끝이 보이지 않아 중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처음에 쓰레기를 파서 쌓았더니 남산만큼 높게 올라갔다”(김영원 국립문화재연구소장) “지하 3m까지 모두 쓰레기로 가득 차 있었다”(이성준 문화재연구소 연구사)는 증언으로 미뤄볼 때 매립된 폐기물은 수천 t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어떻게 국가사적에 쓰레기를 묻을 수 있었는지도 미스터리다.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된 풍납토성은 1997년 백제토기를 발굴한 이래 지속적으로 중요 유적과 유물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문화재청 등은 2006년 폐기물처리업체가 저지른 범행일 것으로 내다보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토성은 여러 관계자와 전문가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곳이었다.
풍납토성이 한성백제의 왕성일 가능성을 처음 발표한 이형구 선문대 교수는 “연구조사를 위해 매일같이 찾아갔는데 낌새도 못 챘다”며 “이미 일반인에게도 중요 유적으로 널리 알려졌던 시기인데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게 더욱 충격적이다”라고 말했다.
수사를 담당하는 송파경찰서는 말을 아꼈다. 지능범죄수사팀 관계자는 “사안이 엄중한 만큼 여러 가능성을 열어두고 접근하겠다”고 말했다.
범인 검거도 중요하지만 이후 대처는 더욱 민감한 사안이다. 쓰레기가 매립된 해자 지역은 물속에 잠긴 유물도 상당하고, 인골이나 곡식 흔적 등 다양한 연구자료도 얻을 수 있는 곳이다. 신라시대 연못 터였던 경주 안압지 유적 발굴 땐 유물이 대거 쏟아져 신라사 연구에 획기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형구 교수는 “풍납토성 해자도 백제 한성시대 초기 역사를 살펴보는 데 핵심적인 장소”라며 “만약 파낸 흙을 어디로 갖다버렸다면 거기도 다시 뒤져야 할 정도로 가치가 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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