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 코가 불만인 취업준비생 A 씨(25·여). 그녀는 상반기 취업시즌을 앞두고 코필러 시술(화학성분인 필러를 주입해 코 모양을 교정하는 시술)을 받을까 고민 중이다.
A 씨는 6일 오후 본보 취재팀과 함께 서울 강남구 압구정역 인근의 한 대형 성형외과를 찾았다. 최고 인기 여성 아이돌그룹 전담 병원으로 알려져 유명해진 곳이다. 고급스러운 분위기의 상담실에서 만난 성형 코디네이터는 “인상이 참 좋다. 취업이 잘되겠다”며 ‘칭찬’부터 시작했다. 코디네이터는 코필러 가격과 효과에 대해 설명하더니 “1년밖에 효과가 없는 120만 원짜리 시술 대신 영구적인 275만 원짜리 코성형을 하라”고 권했다.
A 씨가 머릿속으로 가격을 계산하며 관심을 나타내자 코디네이터는 곧장 ‘지적’을 시작했다. 양손으로 A 씨의 얼굴 곳곳을 만져보더니 “광대뼈가 넓다” “턱뼈가 굉장히 크고 밖으로 뻗어 있다”며 광대뼈 축소술과 사각턱 수술 등 안면윤곽수술까지 권했다. 최소 8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수술이다. A 씨가 망설이는 눈치를 보이자 코디네이터는 자신의 얼굴을 만지게 하더니 직접 ‘비교’하도록 했다. 다른 환자의 수술 전후 사진과 A 씨 얼굴을 비교하기도 했다. “조금만 손대면 드라마틱하게 변할 수 있다”고 ‘희망’을 심어주는 화술이 계속됐다. 병원 밖으로 나온 A 씨는 “코필러만 할 생각이었는데 코디네이터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다른 수술까지 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 부작용 설명 않는 위험한 유혹
중·대형 성형외과에서 환자 상담을 담당하는 성형 코디네이터, 일명 ‘상담실장’의 무리한 환자 영업이 불필요한 성형수술을 부추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인구 대비 성형수술 비율이 가장 높은 ‘성형대국 한국’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는 것.
취재팀은 5, 6일 서울 강남의 대형 성형외과 3곳을 방문해 직접 성형 상담을 받거나 시술 희망자와 동행해 취재했다. 상담은 대개 ‘칭찬→지적→비교→희망→쐐기 박기’ 순으로 진행됐다. 6일 강남역의 한 성형외과에서 만난 상담실장은 “지금도 얼굴이 예쁘다. 만약 조금만 더 예뻐지고 싶다면”이라고 말을 꺼내더니 “나이가 들어 보이니 얼굴에 지방을 이식하자”고 권했다. 추가 수술을 망설이는 환자에게는 “다른 수술과 함께 하면 할인해 주겠다” “이번이 마지막 특가다”며 유혹했다. 단 한 곳도 성형 부작용에 대해 설명하지 않았다. 상담실장에게 설명을 요구하면 “언론이 위험성을 부풀렸다. 교통사고 확률보다 적다”고 답했다.
환자의 상태는 아랑곳하지 않고 간단한 시술을 원하는 환자에게도 뼈를 깎는 안면윤곽수술이나 양악수술을 권하는 ‘땡기기’ 영업도 극성이었다. 상담실장의 ‘땡기기’ 영업의 피해는 고스란히 환자 몫이다. 인터넷 성형 피해 카페에는 “한꺼번에 수술하면 할인해준다는 말에 안면윤곽수술과 양악수술을 받았다가 안면비대칭에 시달리고 있다” “상담실장이 권한 수술을 모조리 받았다가 부작용으로 재수술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이 수두룩하다. 한 대형 성형외과 김모 상담실장은 “사실 의학지식을 갖춘 상담실장은 거의 없다. 실제 수술 구경도 하고 우리도 성형수술을 받으니까 경험 지식만큼은 충분하다”고 설명했다.
일부 대형 성형외과는 전문스피치 강사를 초빙해 상담실장들에게 화술을 가르치고 역할극을 통한 실전 기술을 연마하도록 하고 있다. 환자의 부러움을 사기 위한 외모 가꾸기도 요구한다. 이런 병원들은 상담실장이 수십 명에 달한다.
○ 억대 연봉 내세운 학원까지
성형외과의 흥망성쇠를 좌우할 정도로 상담실장의 역할이 주목받다 보니 양성 학원도 인기를 끌고 있다. 이들 성형 코디네이터 양성 학원은 ‘학력과 성별, 전공 구분 없이 단기간 취업 성공’ ‘자신의 화술로 승부를 볼 수 있는 유망 직종’ 등이라고 내세워 수강생을 모집하고 있다. 서울의 한 학원 관계자는 “2주 안에 취업이 가능하다. 안내 서비스부터 시작하지만 2, 3년 만에 상담실장이 되면 3000만∼5000만 원의 연봉이 가능하다”며 “환자 수술 건수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는 곳에선 억대 연봉도 받을 수 있다”고 홍보했다.
현재 민간자격증으로 등록된 병원 코디네이터 자격증 발급기관은 모두 30여 곳이다. 교육과학기술부 산하 한국직업능력개발원 관계자는 “성형 코디네이터는 국민의 건강이나 생명과 직결된 분야가 아니기 때문에 누구나 등록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공신력을 담보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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