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 장관 후보자가 13일 발표되는 순간 교육과학기술부는 두 번 술렁거렸다. 정부조직법이 통과되지 않아 이날은 장관이 발표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이 깨졌다는 점에서 한 번, 정부 수립 이후 최초로 교육 관료 출신이 장관이 됐다는 점에서 또 한 번.
교육부는 그동안 교수나 학자 출신이 장관으로 임용되는 대표적인 부처였다. 이명박 정부 들어서는 차관 자리에 외부 인사가 오는 경우가 많았다. 교육 관료가 장차관으로 내부 승진하지 못하는 관행이 굳어지면서 유능한 고위공무원이 부처를 떠나는 일도 늘었다. 이런 가운데 서남수 위덕대 총장(61)이 처음으로 교육 관료 출신의 장관으로 내정됐다.
그는 대학학무과장, 대학지원국장, 서울대 사무국장 등 대학 분야의 중책을 계속 맡았다. 특히 2000년대 초반 △본고사 부활 불가 △고교등급제 불가 △기여입학제 불가 등 강력한 ‘3불 정책’을 주도하는 등 대학입시에 깊숙이 관여했다. 내신 반영 비율을 둘러싸고 교육부와 주요 사립대가 갈등을 빚을 때는 차관으로서 양쪽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
교육부에서는 아이디어 뱅크로 통했다. 교육정책기획관을 하면서 굵직굵직한 교육 정책을 많이 내놓았다. 대학 지원 사업의 기틀로 평가 받는 두뇌한국(BK21)을 직접 기획 및 실행했고 한국장학재단의 기초를 닦았다.
대학에 비해 초중등 교육 관련 보직 경험은 상대적으로 적지만 중책을 두루 거쳤다. 1999년 경기도부교육감, 2005년 서울시부교육감 등 가장 규모가 큰 교육청 두 곳을 경험했다.
교육 관료 중에서는 말을 가장 잘하는 사람으로 꼽히기도 했다. 입시 등 예민한 정책을 두고 공청회나 TV토론이 열리면 단골로 출연해서 상대측의 반대 논리를 사실상 무장해제 시킬 정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서 후보자는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교육부 차관으로 있다 2008년 공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경인교대 석좌교수, 홍익대 초빙교수, 위덕대 총장을 지내며 중앙정부와는 사실상 연을 끊었다. 행정고시 동기들이 교육부의 유관기관 기관장을 맡은 것과는 대조적이었다. 더구나 박근혜 당선인과 개인적인 인연도 없어 그의 장관 내정은 ‘깜짝 인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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