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수익은 늘어나지만 일반 시민들의 살림살이는 나아지지 않는 소득 양극화 현상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문제다. 이에 따라 ‘경제민주화’와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으로 기업과 사회가 동반 성장할 수 있을까? 인도의 제조업체 보르텍스가 좋은 사례를 제시해준다.
인도 남부 첸나이 시에 있는 보르텍스는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만든다. 인도는 인구 12억 명의 대국이다. 하지만 80%가 은행이 없는 농촌 지역에 살고 있으며 소득 수준도 낮아 보르텍스의 매출 성장에는 한계가 있었다.
가난하다고 해서 은행이 필요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돈이 없는 사람일수록 빈곤에서 탈출하기 위해서는 저축과 대출 등 금융서비스가 반드시 필요하다. 문제는 은행들이 큰 수익이 되지 않는 빈곤계층을 고객으로 보지 않기 때문에 외진 지역에 지점을 둘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보르텍스는 은행이 없는 모든 시골 마을에 ATM을 설치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런 지역은 전기 공급이 불안하다. 문맹률도 높아 화면에 나오는 글자를 읽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보르텍스는 전기 사용을 최소화하고 문맹자도 이용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기로 했다.
우선 자판을 모두 그림으로 대체하고 화면에 손바닥만 찍으면 신원이 확인되도록 했다. 또 전기를 가장 많이 소모하는 부분이 지폐를 아래에서 위로 이동시키는 모터라는 점을 파악하고 ATM 윗부분에 지폐 보관 공간을 마련했다. 중력에 의해 돈이 아래로 떨어지게 했다. 기기 작동에 필요한 약간의 전기는 태양열 전지로 해결했다. 또 거친 환경에서도 잔고장이 없도록 단순하고 튼튼하게 설계했다.
이 절전형 ATM은 인도 전역에 보급되어 빈곤 타파에 기여하고 있다. 그뿐만 아니라 보르텍스는 이 제품으로 명성을 얻고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했다. 이 회사는 기존 고객층뿐 아니라 사회의 모든 영역을 잠재 고객으로 보고, 공익에 기여하는 동시에 매출 성장도 이뤄내는 창조적 혁신을 추구했다. 이처럼 사회적인 문제가 기업에 제약 조건이 아닌 새로운 사업 기회라고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신동엽 연세대 경영대 교수 dshin@yonsei.ac.kr 정리=조진서 기자 cj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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