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치 이야기는 하지 말자고 했지만 일부 기자들은 유정회의 문제점 등을 큰 영애(令愛·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말하곤 했다. 박 당선인이 그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어떻게든 아버지에게 전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1970년대 후반 청와대를 출입한 전직 언론인
1979년 10·26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퍼스트레이디 박 당선인에게 ‘아는 남자’란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대부분이었다. 박 당선인은 이들과 매주 수요일, 토요일 오후 청와대 테니스장에서 2시간가량 ‘테니스 교제’를 하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들었다.
박 당선인의 테니스 실력은 ‘같이 경기를 할 만하다’는 정도였다.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기술은 다음에 반드시 고쳐서 향상시켜 나올 정도였다. 테니스를 치고 난 뒤에는 손수 떡을 준비하기도 했고 기자들이 요청하면 기타를 치면서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고 한다. 레퍼토리는 주로 동요나 ‘새마을노래’ 같은 것이었다고 당시 언론인들은 기억한다.
동아일보 기자였던 유경현 헌정회 정책위원장은 “여성적인 배려가 돋보였다”고 회상했다. 1978년 여름 박정희 전 대통령은 경남 진해 앞 저도로 휴양을 갔다. 당시에는 출입기자들도 취재차 동행을 했다. 유 전 기자가 어느 날 아침 모래밭을 산책하는데 큰 영애인 박 당선인이 걸어오더니 “사파이어 선생에게서 연락이 왔나요?”라고 물었다.
그 며칠 전 미국 칼럼니스트 윌리엄 사파이어가 뉴욕타임스에 ‘코리아 게이트’와 인권문제를 들어 한국 정부를 비난하는 칼럼을 썼다. 그러자 유 전 기자는 ‘사파이어 선생에게’라는 제목으로 미국 정부의 ‘인권에 대한 이중 잣대’를 들어 반박하는 작은 기사를 썼는데 박 당선인이 그걸 읽었던 것이다.
김진기 전 KBS 보도본부 해설위원은 “우리들이 많이 괴롭혔다”며 박 당선인의 ‘수줍은 여성’으로서의 면모를 떠올렸다. 당시 충효사상을 고양시키기 위한 ‘새마음 운동’을 주도했던 박 당선인은 전국을 돌며 ‘새마음 갖기 궐기대회’를 열었다. 대회 장소로 이동할 때 박 당선인과 출입기자들은 같은 버스를 타고 다녔다.
어느 날 김 전 위원이 차 안에서 “충효사상을 강조하면서 혼기가 된 자녀로서 결혼하지 않으면 불효 아니겠느냐”며 “얼른 혼인을 해서 외로운 아버지에게 손주를 안겨드리면 얼마나 기뻐하시겠느냐”고 박 당선인을 놀렸다. 같이 탔던 부속실 비서관들이 이맛살을 찌푸리며 ‘그만하라’는 표시를 했다. 박 당선인은 얼굴이 빨개졌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상대가 없잖아요. 아버지가 절 보고 계시는데 도와드릴 때까지는 도와드려야지요”라고 했다는 것.
박 당선인은 육영수 여사 생전에 ‘작고 예쁜 집을 꾸미며 커피를 끓여 마시는’ 소박한 삶을 꿈꾼 적이 있었다. 박 전 대통령도 그런 꿈을 퍼스트레이디 역할 때문에 미뤄둬야 하는 딸을 보며 안타까워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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