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이 2009년 원자바오(溫家寶) 중국 총리를 통해 이명박 대통령에게 제3차 남북정상회담을 먼저 제안한 사실이 이 대통령과 핵심 측근의 증언으로 처음 확인됐다.
이 대통령은 14일 동아일보와의 단독 인터뷰에서 “김 전 위원장이 원 총리를 통해 ‘이 대통령을 만나고 싶다’는 사인을 공식적으로 전해 왔다. 당시에는 ‘쌀, 보리 달라’는 식이 아니라 ‘그냥 만나고 싶다’고 했다”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전 정부에서는 북한을) 찾아가서 만나기에 급급했지만 나는 남북관계를 대등하게 정상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게 효과가 있었다”라며 “나도 ‘한반도의 평화를 유지하고 핵문제에 진전이 있다면 만날 용의가 있다’고 답했다”라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의 제안 시점을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이 대통령의 핵심 측근은 17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제안 시점은 2009년”이라고 설명했다.
이 대통령은 이어 “원 총리를 통해 김 전 위원장에게 ‘이젠 한국에 한번 와야 하지 않겠느냐. 서울이 아니라 제주, 인천, 파주, 문산, 판문점도 좋다’고 이야기했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원 총리는 ‘저쪽(김 전 위원장)에서 먼저 만나자 했으니까 장소에 너무 구애받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고, 나도 ‘그것(김 전 위원장의 남한 방문)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라고 말했다.
2009년 10월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김양건 북한 통일전선부장의 ‘싱가포르 접촉’은 원 총리를 매개로 한 이 같은 간접 대화 후 진행된 것으로 밝혀졌다. 이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이 먼저 나를) 만나겠다고 한다니까 그 밑에 있는 김양건 같은 사람이 (임 당시 장관에게) 실무적으로 연락을 했던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정상회담 성사가 불발된 데 대해선 “(김 부장 등) 밑에서는 ‘한국 대통령이 (북한에 오려면) 당연히 대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이제까지 해 오던 방식의 테두리를 벗어날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북측이 정상회담의 대가를 요구했고 우리 정부가 이를 거절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대가 요구’가 김 전 위원장의 지시였는지에 대해 이 대통령은 “김 전 위원장의 생각인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김 전 위원장은 그런 것을 떠나서 만나고 싶어 했는지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적으로 (활용) 하려면 (북 측의 요구를 들어주고) 정상회담을 했지, 안 했겠느냐”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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