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킷리스트의 꿈을 이룬 사람들]송기헌 前교수의 실크로드 배낭여행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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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놓고 나를 얻는 길, 내 전생은 여기서 멈췄나 보다

오아시스 남쪽 길을 따라 파키스탄 북부로 오면 장수 마을로 유명한 훈자 지역으로 이어진다. 훈자마을과 산악지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독수리둥지’ 언덕에 오른 소녀들이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다. 2012년 촬영. 훈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오아시스 남쪽 길을 따라 파키스탄 북부로 오면 장수 마을로 유명한 훈자 지역으로 이어진다. 훈자마을과 산악지형이 시원하게 내려다보이는 ‘독수리둥지’ 언덕에 오른 소녀들이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다. 2012년 촬영. 훈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가고 싶다. 한 번쯤.

나이 50을 넘긴 언제쯤이었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서 봤던 ‘비단길(실크로드)’이 떠올랐다. 희미한 추억이 작은 불씨가 됐다. 불씨는 점점 가슴을 데웠다. 늘그막에 생뚱맞게 웬 비단길이냐…. 그러나 늘어나는 흰 머리도 불씨를 꺼뜨리지는 못했다. 세월의 바람은 오히려 불씨를 점점 타오르게 했다.

가고 싶다. 죽기 전에.

2005년 어느 날, 결국 불덩이가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말았다. 비단길, 비단길…. 책과 인터넷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수천 년 전부터 동양과 서양을 이었던 길. 누군가에게는 먹고살기 위한 터전. 누군가는 깨달음을 얻기 위해, 또 전하기 위해 지나야 했던 고행의 무대.

정확히 환갑이 되던 해인 2007년, 그는 가슴속으로 실크로드를 걷고 있었다. 바로 송기헌 전 청운대 호텔관광경영학과 교수(66) 이야기다. 이때부터 송 전 교수는 매일 저녁이면 상상 여행을 했다. 흙냄새 가득한 길. 그 속에서 질긴 목숨을 이어가는 낙타의 숨소리, 그리고 사람의 땀 냄새.

어디 옛 정취에만 취해 있을쏘냐. 수도 없이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비행기를 타고 중국 시안(西安) 공항에 도착한다. 공항에서 역까지 버스를 탄다. 시안역 광장에 도착. 이어 오른쪽에 있는 작은 성문을 지난다. 작은 성문을 통과해 길을 건너면 보이는 숙소에서 첫째 밤을 지내고….

짜릿한 상상. 3개월간의 상상 여행만으로도 몸이 달아올랐다. 더이상 미룰 수 없다! 2007년 4월, 송 전 교수는 마침내 실크로드에 발을 디뎠다. 그의 나이 60세. 동반자는 달랑 배낭 하나였다.

동서양을 잇는 길, 실크로드

“나는 전생에 승려였던 것 같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전하기 위해 실크로드를 걸었지. 산길도 걷고 사막 길도 지나고. 아뿔싸. 그렇게 걷다가 죽고 말았어. 법현, 현장, 혜초와 같은 유명한 불승처럼 되지도 못하고 말이야.”

송 전 교수는 실크로드 배낭여행을 출발하기에 앞서 지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오래전부터 전생에 하지 못한 업(業)을 마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는 말과 함께. 그 업을 마친 지금 심정은 어떨까. 경기 용인시 자택에서 기자를 만난 송 전 교수는 “실크로드에서 돌아온 후 숙제를 다 끝낸 것 같은 후련함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크로드. 자세히는 몰라도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본 곳. 이 이름을 지은 사람은 독일의 지리학자 페르디난트 폰 리히트호펜이다. 그는 자신의 저서에서 중국 비단이 중앙아시아와 서북 인도에 수출된 경로를 ‘자이덴 슈트라세’(‘Seiden’은 비단, ‘Strasse’는 길이란 뜻이다)라 명명했다.

그러나 비단만 이 길을 거쳤을까. 이 길을 통해 중국의 제지술도 서양으로 건너갔다. 제지술은 훗날 유럽 종교개혁에 큰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실크로드가 유럽 근대화에 큰 기여를 한 셈인가. 향료도 이 길을 통해 아시아 곳곳으로 전해졌다. 서양 문물도 동쪽으로 넘어왔다. 상인이며 승려며, 셀 수 없이 많은 인간 군상이 이곳을 지났다. 이슬람교도들도 험한 산맥을 마다 않고 넘었다.

실크로드가 하나의 길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동서양을 잇는 수 갈래 길. 이 길들은 흩어졌다 다시 만난다. 크게는 초원길과 오아시스 길로 나눈다. 초원길은 기원전 7세기 이전에 ‘개통’됐다. 흑해에서 우랄산맥을 넘어 알타이 지방까지 횡단하는 길. 오아시스 길은 말 그대로 중앙아시아에 흩어진 오아시스를 연결하는 통로다. 동쪽의 끝인 중국 시안에서 서쪽 끝인 터키 이스탄불까지, 길이는 1만2000km에 이른다. 오아시스 길은 다시 북로와 남로로 구분한다. 시안에서 둔황(敦煌)과 투루판(吐魯蕃), 카스(喀什) 등 지금의 신장웨이우얼(新疆維吾爾)자치구를 지나 이란을 거치는 길이 북로다. 가장 많이 이용된 길이다. ‘동방견문록’의 주인공 마르코 폴로도 이 길을 걸어 중국에 갔다.

송 전 교수는 시안부터 카스까지는 오아시스 북로를 따랐다. 카스에서부터는 오아시스 남로를 따라 파키스탄 북부 지방으로 내려와 장수 마을로 유명한 훈자 지역 등을 여행했다.

수천 년의 사람 향기, 노객(老客)을 붙들다

수많은 문물과 문화가 오고 갔던 실크로드. 그 과거의 영화를, 지금은 찾기 어렵다.

실크로드의 동쪽과 서쪽 끝 나라들은 현대 문명의 혜택을 많이 받았다. 두 극단을 연결하는 길은 여전히 험하고 후지다. 거친 산길과 흙길. 어쩌면 험한 길이기에 사람들이 애써 그곳을 걸었던 게 아닐까. 깨달음에 이르는 구도자의 숙명이리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매력.’ 실크로드에 끌린 이유를 묻자 나온 송 전 교수의 대답이다.

“실크로드 곳곳에 있는 재래시장에 가면 온통 땟국이 줄줄 흘러요. 아이들이나 상인이나 매한가지랍니다. 먼지는 풀풀 날리고 쥐가 돌아다녀요. 그런데도 여기저기 모여앉아 식사를 하더군요. 옛날에도 그랬을 거예요. 험한 땅에서 살다 보면 서로 뒤엉겨 붙어살지 않았을까요?”

신장웨이우얼 카스에서 타스쿠얼간(塔什庫爾幹)을 거쳐 파키스탄 국경에 이르는 길. 송 전 교수가 가장 기억에 남는 길로 꼽는 곳이다. 창밖으로 이어진 황토 빛깔 구릉 지대. 나무는 별로 없다. 군데군데 흙집이 보인다. 땔감용 나무를 대신할 소똥과 말똥을 모아 놓은 게 눈에 띈다.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람이 살까 싶었다.

버스에서 내려 잠시 들른 마을. 때마침 장터가 섰다. 당나귀 차는 사람을 피해 느릿느릿 지나간다. 사람들의 얼굴은 햇볕에 그을려 검다. 수염은 깎지 않아 더부룩하다. 생각났다. 어린 시절 봤던 풍경. ‘어떻게 사람이 살까 싶은 곳’은 실은 불과 얼마 되지 않은 과거였다. 한국은 빠르게 변했고 송 전 교수 역시 빠르게 변했다. 하지만 실크로드는 오래전 과거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사람의 향기가 풀풀 묻어나는 과거로의 회귀. 그렇지만 화려한 문화를 잉태했던 길. 어느 순간 멈춰 서서 생각에 잠긴다. 많은 것을 돌아보게 하는 여행.

그가 혼자 실크로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많은 사람이 ‘나이도 있는데 힘들지 않겠느냐’고 걱정했다. 물론 힘들었다. 여행 2주째 우루무치(烏魯木齊)에서 심한 몸살이 났다. 먹는 것은 부실했고 자는 곳도 편하지 않았다.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간직한 설렘을 고작 2주 만에 몸살과 바꿀 수는 없었다. 그는 “아픈 몸으로 계속 돌아다니니까 몸살이 ‘너한테 졌다’면서 도망가는 것 같았다”고 했다.

“한국 사람들은 너무 편한 여행만 하려고 해요. 50세만 돼도 으레 깃발 따라 다니는 단체 여행만 가려고 하고 휴양지나 온천만 찾죠. 60세, 그렇게 많은 나이 아니에요.”

중국 역사상 최초로 천축국(인도)을 다녀온 승려 법현은 60세에 고행에 나섰다. ‘나는 걷는다’의 저자 베르나르 올리비에도 63세 때부터 3년 넘게 터키부터 중국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걸었다.

길 위에서 만난 여행자들 그리고 행복한 사람들

둔황에서 만난 독일인 중년 부부. 10개월째 여행 중이라고 했다. 둘 다 장애인 학교 교사인데, 3년 동안 일을 하면 1년은 쉰다고 했다. 쉬는 1년 내내 여행을 하기로 작정하고 길을 떠났단다. 그럼 자녀는 누가 돌봐주지?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했던가. 바로 대답이 나왔다.

“우리가 낳은 자식은 없어요. 학교 제자들이 모두 자녀랍니다.”

부부가 활짝 웃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 자녀들에게 이야기를 해 주면 즐거워할 거라며…. 짧은 만남, 그러나 강렬한 인상. 부인은 남편보다 더 큰 배낭을 메고 앞장서서 걸었다.

여행지에서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즐거움, 그 자체다. 송 전 교수에게도 실크로드에서 만난 사람들이 많이 기억에 남는다.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자유를 갈망했다. 커다란 짐을 무거워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라도 쉽게 미소를 지었다. 그 옛날 실크로드를 걸었던 상인들이 그러지 않았을까.

여행 중 만난 현지인들과 대화한 것도 잊을 수 없는 경험. 색 바랜 옷, 해진 옷을 입고 있지만 그들은 “행복하다”고 말했다. 이슬람 신도도 꽤 만났다. 낯선 한국인이 민감한 질문을 던져도 또박또박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을 얘기했다. 물론 해맑게 웃으면서.

여행 기간이 길어지면서 ‘이런 곳에서 어떻게 사나 싶던’ 사람들이 사실은 ‘순수한 미소를 잃지 않은’ 사람들임을 깨달았다. 그들의 미소를 알아갈수록 그들에게 동화되는 자신을 봤다. 먼지가 뽀얗게 내려앉은 낭(화덕에 구운 빵, 신장웨이우얼과 북부 파키스탄 사람들이 즐겨 먹음)을 한입 베어 물면 주린 배는 채워졌다. 오물이 넘쳐나던 화장실도 어느덧 능숙하게 이용하게 됐다.

여행에 걸린 총기간은 한 달여. 이 여행만으로 실크로드를 알았다고 말하긴 힘들지 모른다. 송 전 교수가 밟은 길은 과거 상인들이 지나다녔던 실크로드, 그 장황한 길의 100분의 1, 아니 1000분의 1도 안 될 것이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실크로드는 그의 마음의 100%를 채웠다.

“누구에게나 끌리는 곳이 있잖아요. 그게 꼭 실크로드가 아닐 수도 있겠죠. 하지만 그런 곳이 있다면 떠나야 합니다. 준비는 오래 해도 되지만 주저하면 안 되죠.”

▼ tip! 실크로드 배낭여행 준비 ▼

■ 마음 먹는 것이 절반 사전공부는 철저하게… 漢字 필담 큰 도움 ▼


실크로드 여행은 분명 쉬운 여행은 아니다. 송기헌 전 교수는 실크로드 여행을 위해 가장 먼저 “미쳐야 한다”고 말했다. 가슴속에서 올라오는 뭔가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힘들게 그런 곳을 왜 가’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굳이 갈 필요가 없다.

마음먹는 것이 절반. 실크로드가 강하게 끌렸다면 준비가 어렵지만은 않다. 우선 앞서 실크로드를 여행한 사람들의 자료를 수집해야 한다. 송 전 교수가 지은 ‘가자, 실크로드 배낭여행’과 여행 작가 이지상 씨가 쓴 ‘실크로드 여행’ 등을 참고할 만하다. 또 전직 기자 출신의 프랑스인 베르나르 올리비에가 실크로드를 걸어서 횡단한 뒤 쓴 ‘나는 걷는다’를 읽는 것도 많은 도움이 된다.

실크로드는 다양한 길을 통칭하는 말이다. 총 길이도 어마어마하다. 실크로드로 불렸던 모든 지역을 여행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따라서 실크로드 중에서 어느 경로를 여행할지 정해야 한다. 오아시스 북로, 그중에서도 중국의 신장위구르자치구를 도는 것이 가장 일반적이다. 여행사 상품도 비교적 많은 편이다.

중국 국경을 넘어 더 멀리 여행하고자 한다면 좀더 많은 준비가 필요하다.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 파키스탄 그리고 이란, 레바논 지역과 터키에 이르기까지 루트가 광범위하기 때문에 자신의 상황에 맞게 경로를 선택해야 한다.

배낭여행을 하려면 숙소와 교통편을 미리 예약할 필요는 없다. 예약 자체도 어렵고, 일정이 바뀔 가능성도 작지 않다. 이 때문에 어느 지역에, 어떤 숙소가 괜찮은지는 숙지해야 한다. 교통편도 미리 알아둬야 고생이 덜하다.

현지 의사소통 문제도 중요하다. 중국어는 못하더라도 한자는 읽을 줄 알아야 한다. 영어 간판이 아예 없는 지역이 많다. 말은 안 통해도 한자어를 써서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마지막으로 중요한 것은 인내심. 한두 시간 걷는 것은 일상으로 여겨야 한다. 내 눈에 무질서한 모습도 현지에서는 나름의 질서로 포용해야 한다. 어느 지역이든 모든 사람이 다 친절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도 잊으면 나만 피곤하다.

용인=한우신 기자 hanwshin@donga.com
#송기헌#실크로드#배낭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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