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 &]팀원 32명중 26명이 장애인… ‘溫라인’ 게임회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6일 03시 00분


부산의 한 건설회사에 다니던 박재형 씨(37)는 3년 전 희귀병에 걸려 대퇴부를 깎아내는 고통을 겪었다. 직장도 잃었다. 군 제대 이후 교통사고로 하반신이 마비된 신동지 씨(32), 소아마비로 거동이 불편한 김영욱 씨(23) 역시 비슷한 처지였다. 이들 중증 장애인에게 맘 편히 일할 수 있는 곳은 없었다.

그러나 이들은 이제 어엿한 직장인이다. 동료와 함께 커피를 마시고, 퇴근한 뒤에는 야구장에서 수다를 떨며 스트레스를 날린다. ‘게임 운영 전문가’라는 타이틀도 갖게 됐다.

“영욱 씨는 커피 4잔 사오고, 재형 씨는 서둘러 회의 준비 부탁해요.”

부산 해운대구 센텀시티 부산문화콘텐츠콤플렉스(BCC)에 있는 게임 운영회사 넥슨커뮤니케이션즈의 사무실 모습은 여느 기업과 다르지 않았다. 임주현 웹서비스운영팀장의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박 씨는 자료를 복사해 회의장에 펼쳐놓았고 막내인 김 씨는 커피를 배달했다. 부지런히 전화해 회의 참석을 알리는 이도 있었다. 휠체어나 목발에 의지하는 탓에 빠르진 않았지만 이들의 진가는 온라인에서 발휘된다.

게임회사의 웹서비스팀은 사용자의 반응을 확인하고 불만을 접수해 원활한 게임 진행을 돕는 게 일이다. 복잡한 게임 구조를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야 고객들의 요구에 신속히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응급상황에 개발 또는 마케팅 등 다른 팀과의 협업이 가능하다.

임 팀장은 “전체 팀원 32명 가운데 야간근무자 6명 외에는 모두 장애인이고, 그중 절반 이상이 중증 장애인이지만 다들 PC와 게임에 숙달돼 능숙하게 고객의 민원을 파악하고 친절하게 대처한다”며 “생산성은 비장애인보다 높다”고 말했다.

90여 명이 일하는 넥슨커뮤니케이션즈는 국내 최대 게임회사인 넥슨의 자회사로 2011년 11월 설립됐다. 넥슨 창업주인 김정주 NXC 사장의 강한 의지에 따라 처음부터 장애인을 주로 고용했다. 약 4개월간의 교육 및 준비과정을 거쳐 지난해 3월부터 본격적으로 운영을 시작했다.

장애인 위주 회사는 넥슨커뮤니케이션즈 외에도 더러 있다. 대부분은 장애인 의무고용비율을 맞추기 위해 본사가 설립한 ‘자회사형 표준사업장’이거나 대기업이 이익보다는 사회공헌활동 차원에서 운영하는 곳이다.

하지만 김 사장은 많은 활동을 할 필요가 없는 게임회사야말로 장애인들을 고용하기에 꼭 맞는 업종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사업 초기 ‘바람의 나라’의 사용자 모임에 참석한 한 장애인이 “게임에서만큼은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걷고 뛰어다닐 수 있다”고 한 말에 강한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김 사장은 수도권 중심의 게임산업에서 탈피하기 위해 부산에 넥슨커뮤니케이션즈를 만들고 1년 사이 3차례나 방문할 정도로 적극적으로 후원했다.

운영이 쉽지는 않았다. 집 안에서 혼자 오래 생활한 장애인들은 직장 내의 갈등을 풀어내는 소통에 특히 약했다. 점심식사, 출퇴근 등 일상적인 것조차 기존 삶의 방식과 달라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그 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고 퇴사한 사람도 있다. 1년이 지난 이제 와서야 장애인이나 비장애인이나 장애를 단순히 ‘불편함’으로 인식할 정도로 마음을 열 수 있게 됐다.

넥슨커뮤니케이션즈를 둘러보고 나서야 일반 기업들이 장애인 고용을 주저하는 이유를 분명히 알게 됐다. 사무실은 모든 문턱을 없애고 자동문과 함께 이동경로 전체에 핸드레일을 설치했다. 장애인 전용 화장실과 샤워시설, 휴게실도 필수적이었다. 회사 측은 “이런 시설을 갖추려면 사무실 면적이 일반적인 것보다 두 배 이상, 인테리어 비용은 5배가 든다”고 말했다.

김영욱 씨는 “상당수의 장애인에게 컴퓨터는 생활의 무기”라며 “어렸을 때부터 컴퓨터, 또 게임과 함께 성장해온 장애인들은 게임산업의 당당한 파트너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직장생활을 경험한 박재형 씨는 “평범하게 출근할 기회를 다시 갖게 된 것이 가장 행복하다”면서 “정보기술(IT)과 게임 운영에 대한 교육을 더욱 늘려 더 많은 장애인이 자활할 수 있게 하면 좋겠다”고 제언했다.

이들을 지켜보던 이경준 총괄본부장은 “게임산업은 장애인이 할 수 있는 분야가 적지 않다”며 “올해는 장애인 직원 가운데 간부 사원까지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부산=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넥슨커뮤니케이션즈#장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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