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게 보면 다 같은 중소기업청 일인데 한쪽에선 재기할 수 있게 도와주고선 다른 쪽에서는 사업에 참여할 기회조차 주지 않더군요.”
이상진(가명) 씨는 지난해 겪은 일을 털어놓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식품 제조업체를 운영하던 이 씨는 2007년 부도를 냈다. 이 과정에서 회사 빚 3억 원을 떠안는 바람에 금융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가 됐다. 그러나 2010년 초 기능성 식품을 만드는 회사를 세워 재기를 노렸다. 2011년에는 중기청 산하 중소기업진흥공단에서 약 2억 원의 재창업자금을 지원받아 부족하나마 자금도 마련했다. 이후 대량생산 공정을 갖추고 본격적으로 제품을 만들 준비를 했다.
하지만 곧 벽에 부닥쳤다. 미국식품의약국(FDA) 승인, 유럽안전인증마크(CE) 등 해외 규격 인증 획득을 일괄 지원하는 중기청 사업에 신청하려 했지만 “금융채무불이행자는 안 된다”라는 답변을 받은 것이다. “인증만 받으면 바로 계약하자”라는 바이어의 말에 한껏 고무됐던 그는 백방으로 방법을 찾아봤지만 헛수고였다. 중기청 지원 없이 인증을 받으려면 수천만 원의 비용이 들고 전담 인력도 필요했다.
중진공은 실패한 중소기업인의 재기를 돕기 위해 2010년 재창업자금 지원을 시작했다. 이 씨와 같은 금융채무불이행자도 우수한 기술이나 다양한 사업 경험이 있으면 대상이 될 수 있다. 물론 까다로운 심사를 거친다. 고의로 부도를 냈거나, 회사자금을 유용했거나, 사기 등의 전력이 있으면 탈락한다. 중진공은 기업 평가 외에 기업인의 도덕성도 평가한다. 신용회복위원회도 심사에 참여한다.
이런 절차를 거쳐 지난해 231개 신청 업체 가운데 56.7%인 131곳이 총 200억 원의 재창업자금을 받았다. 업체당 평균 1억5000만 원을 지원받은 셈이다. ▼ 해외규격 인증지원 못받아 ‘재기 좌절’ ▼
중진공 관계자는 “충분하지는 않지만 재기를 노리는 중소기업인들에게 이 제도는 ‘가뭄에 단비’ 같은 역할을 한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재창업자금 지원이 금융채무불이행자라는 ‘낙인’마저 지우지는 못한다는 것이다. 해외 규격이나 인증을 딸 때 지원을 받거나 중기청이 빌려주는 다른 정책자금도 신청하기 어렵다. 중기청은 대부분의 정책자금 지원 사업 공고에서 ‘금융기관이 불량 거래처로 규제하고 있는 기업 또는 대표자는 참여할 수 없다’라고 못 박고 있다.
이 씨는 “중진공이 재창업자금을 지원하기 전에 사업 아이템과 도덕성 등을 상세하게 검토한 것은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한 것 아니겠느냐”라며 “재기하라고 돈을 주는 것은 뭐고, 금융채무불이행자라는 이유로 신청조차 못 하게 하는 것은 또 뭐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에 대해 중기청 관계자는 “안타깝지만 정부 사업 대부분은 금융채무불이행자에 대해서는 각종 사업의 신청자격을 제한하고 있다”라며 “해외 규격 인증 획득 지원사업 참여 자격도 전부터 정해진 기준을 따른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내년부터는 재창업자금을 지원받은 업체도 해외 규격 인증획득 지원에 참여할 수 있도록 관련 사업 규정 개정을 검토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이 씨는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금융채무불이행자가 된 게 죄지요. 법인카드도 못 만들고 은행에 찾아가도 문전박대당하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정부는 좀 달라야 하지 않겠습니까. 중기청이 재기를 꿈꾸는 중소기업인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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