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동 꺼! 반칙운전]운전-인솔자 안내도 없이… 통학차 53대중 35대 ‘아찔 하차’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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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원가 학생들 승하차 현장 점검해보니…

창원 통학아동 참변 현장 일곱 살 강준기(가명) 군이 26일 오후 사고를 당한 경남 창원시 마산회원구 양덕동 이면도로. 태권도복 자락이 차량 문에 끼인 채 끌려가다 오른쪽에 보이는 흰색 트럭 왼쪽 뒤 모서리에 부딪혔다. 이 일대는 인도와 차도 구분이 없어 아이들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아래 사진은 강 군이 탔던 태권도학원 차량. 경남지방경찰청 제공·강정훈 기자 manman@donga.com
어린 자녀를 둔 부모는 또 불안에 떨어야 한다. 태권도든 수학이든, 어린 자녀를 학원에 보내지 않는 부모가 없는 탓이다. 26일 학원 승합차 문틈에 옷이 끼여 사망한 강준기(가명·7) 군의 비보가 시민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아이를 믿고 맡길 수 있어야 할 학원 승합차가 되레 생명을 앗아갔다는 소식에 부모들의 가슴은 또 철렁한다.

동아일보 취재팀이 27일 서울의 학원가에서 통학차량을 따라가 보니 ‘제2, 제3의 준기’를 만들지 모르는 상황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학원 강사나 운전사가 직접 아이들을 안내하는 통학차량은 3대 중 1대꼴에 불과했다. 이대로 방치하면 학원차에 치이고, 옷이 끼여 죽는 아이들의 비보를 또 들어야 할 게 뻔하다.

○ 통학차량 66% ‘안전 사각지대’

27일 오후 1시 15분경 서울 양천구 목동 H학원 앞. 학원 이름이 적힌 노란색 12인승 승합차에서 초등학교 3, 4학년 어린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길가에 주차된 다른 차들 때문에 학원버스가 인도에서 1m가량 떨어진 곳에 정차했지만 아이들이 안전하게 내리도록 안내하는 인솔자는 없었다. 학원버스 운전사는 아이들이 차에서 내리기 무섭게 차 뒷문을 자동으로 닫고 출발했다. 아이들 안전을 살피기엔 너무 짧은 시간이었다.

취재팀은 27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강남구 대치동, 노원구 중계동 등 학원가에서 통학차량 53대를 따라가며 취재했다. 그 결과 통학차량 53대 중 35대(66%)가 어린이들의 승하차 시 아무런 안전 조치도 하지 않았다.

취재팀이 송파구 방이동 C학원의 통학차량을 20여 분간 뒤따라가는 사이 어린이 14명이 타고 내렸지만 매번 아이들이 자리에 앉기도 전에 출발했다. 기사는 단 한번도 내려서 아이들 안전을 확인하지 않았다.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어린이 통학버스엔 인솔자가 동승해 어린이들을 안전하게 내려줘야 한다. 인솔자가 없으면 운전사가 차에서 내려 아이들이 내리는 모습을 직접 지켜봐야 한다. 하지만 규정을 지키는 차량은 절반도 안 됐다. 학원버스를 매일 탄다는 초등학생 이모 군(10)은 “학원 선생님이 같이 탄 적은 한 번도 없고 운전사 아저씨도 ‘바쁘니까 빨리 내리라’고만 한다”고 말했다. 2007∼2011년 5년간 전국에서 발생한 어린이 통학버스 사고는 2707건으로, 사고로 숨진 13세 미만 어린이는 17명이었다.

○ 아이들은 죽는데 손놓은 단속

통학차량 옆을 지나는 일반차량의 반칙운전도 비극을 부른다. 27일 오후 서울 노원구 중계동 은행사거리 주변 학원가. 유리창에 ‘어린이 보호차량’이라고 써 붙인 통학차량에서 내린 어린이들이 인도를 향해 뛰어가는 동안에도 옆 차로에선 마을버스와 승용차가 속력을 줄이지 않고 달리는 아찔한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됐다. 강남구 대치동에선 학원 앞으로 차를 대려는 통학차량을 시내버스가 추월하는 게 예사였다.

현행법상 어린이 통학버스가 정차해 있을 땐 옆 차로를 지나기 전 일시 정지해야 하지만 이를 지키는 운전자는 한 명도 없었다. 학원가와 주거 밀집 지역에서도 운전자들은 아들딸이 타고 있을지 모르는 ‘노란 버스’를 보고도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2010년 6월 서울 서초구 방배동에선 학원차량에서 내려 길을 건너던 한 초등학생(7)이 뒤따라오던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어린이나 유아가 이용하는 통학차량은 관할 경찰서에 ‘어린이 통학버스’로 신고해야 관련법에 따라 보호받을 수 있지만 거리에서 볼 수 있는 통학차량 대부분은 미신고 차량이다. ‘어린이 통학버스’로 신고하면 약 150만 원을 들여 안전기준에 맞게 차량을 개조해야 하기 때문에 영세 학원에선 차량을 신고하지 않고 유리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는 문구만 붙인다. 2011년 기준 전국 통학차량은 13만5991대지만 이 중 신고 차량은 3만6136대(26.6%)뿐이다. 대한태권도협회 관계자는 “영세한 학원에선 차에 동승할 교사를 따로 채용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구멍투성이 제도와 솜방망이 처벌도 이런 사고를 부르는 원인이다. ‘어린이 통학버스’로 신고하지 않으면 ‘어린이 통학용 차량’으로 분류되는데 이 경우 별도의 인솔교사를 두지 않아도 된다. 다만 운전사가 안전하게 승하차하는지 차에서 내려 직접 확인하기만 하면 된다. 운전사가 직접 내려 확인하지 않는 일이 비일비재하지만 우연히 현장에 있던 교통경찰에게 적발되는 경우를 제외하면 단속되는 사례가 드물다. 단속되더라도 범칙금 7만 원만 물면 된다. 지난해 이 조항을 어겨 단속된 운전사는 267명뿐이다.

통학차량 운전사를 대상으로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교육을 받지 않아도 불이익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도로교통공단이 지난해부터 통학차량 운전사를 대상으로 연 3시간 의무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교육을 받은 운전사는 4만1054명에 그쳤다. 당국이 추산하는 전국 통학차량 운전사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수치다. 아무런 처벌이 없는 탓이다.

○ 어린이 죽이는 반칙운전에 극약처방을

동아일보 ‘시동 꺼! 반칙운전’ 시리즈의 자문기관인 행정안전부 국토해양부 경찰청 교통안전공단 한국교통연구원 한국도로공사 손해보험협회 삼성교통안전문화연구소는 이날 “어린이 보호 의무를 소홀히 하는 운전사와 학원에 대해 ‘극약처방’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의 승하차를 직접 지도하지 않는 운전사에게 월급에 육박하는 과태료를 물리고 여러 차례 적발된 학원은 아예 등록을 취소시키자는 제안이다. 학교에서 교통안전교육을 정규 교과목으로 지정해야 한다는 방안도 나왔다.

교통안전공단 안전평가처 정관목 교수는 “교육을 안 받아도 아무런 불이익이 없는 ‘의무교육’을 뜯어고치고 전용 면허를 취득해야 통학차량을 운전할 수 있도록 자격 요건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건희·이은택·김성규 기자 beco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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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칙운전#통학차#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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