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드림/서비스 가시 뽑아야 일자리 새살 돋는다]<6> 각종 규제-부담금에 우는 중소 관광호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1일 03시 00분


객실TV 안봐도 방마다 수신료… 2만개 일자리 갉아먹어

경기 안양시에 있는 삼원프라자호텔은 객실마다 설치된 TV 수만큼 매달 수신료를 내고 있다. 30년 가까이 이 호텔에 근무한 최기환 총지배인과 이명일 이사(왼쪽부터)는 “TV 수신료뿐 아니라 고정비용, 각종 부담금 등이 부담스러워 꼭 필요한 인력도 채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양=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경기 안양시에 있는 삼원프라자호텔은 객실마다 설치된 TV 수만큼 매달 수신료를 내고 있다. 30년 가까이 이 호텔에 근무한 최기환 총지배인과 이명일 이사(왼쪽부터)는 “TV 수신료뿐 아니라 고정비용, 각종 부담금 등이 부담스러워 꼭 필요한 인력도 채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안양=염희진 기자 salthj@donga.com
경기 안양시에서 삼원프라자호텔을 운영하는 박현준 사장(47)은 객실마다 달려 있는 TV 대수만큼 매달 수신료를 낸다. 객실 70개, 대당 2500원으로 매달 수신료만 17만5000원이 든다. 이 외에 이용객들이 외국 방송을 볼 수 있도록 위성방송 이용요금까지 별도로 지불하고 있다. 전체 투숙객의 97%를 차지하는 외국인 손님을 위해서다.

“외국 손님은 관광 다니느라 객실에서 TV 볼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한국 방송을 볼 일은 더더구나 없죠. 그런데 왜 호텔은 TV 대수만큼 수신료를 내야 하나요. 일반 주택은 TV 수에 관계없이 한 대 요금만 냅니다. 각종 세금 혜택, 인센티브는 사라졌는데 내야 하는 부담금은 그대로예요. 인력이 필요해도 더 뽑을 여력이 있겠어요?”

월매출 1억2000만 원 정도인 1급 관광호텔에서 이 정도 비용은 큰 부담이 아니라고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속사정은 다르다. 지난 몇 년간 이 호텔은 적자를 간신히 면할 정도로 운영난을 겪고 있다. 가장 큰 타격은 2009년 관광숙박업에 대한 부가가치세 영세율(零稅率) 폐지로 매출이 한꺼번에 10% 정도 줄어든 것. 외국인 투숙객 비율에 따라 토지 및 건축물에 부과하는 재산세 50% 감면 혜택도 내년부터 없어진다.

관광호텔에 대한 인센티브는 없어졌는데 각종 부담금, 고정비용은 그대로다. 9층짜리인 이 호텔이 매달 내는 교통유발부담금은 월 200만 원 정도. 33년 된 건물의 객실 보수작업을 해야 하지만 그럴 돈이 없다는 게 박 사장의 고민이다.

1980년 문을 열 당시 이 호텔의 직원은 110여 명이나 됐다. 지금은 20여 명의 직원만 근무하고 있다. 바쁠 때면 사장이 직접 주차관리까지 맡는다. 호텔 입구에서 손님을 맞으며 짐을 들어주는 ‘벨보이’조차 고정적으로 두지 못하는 상황이다. 박 사장은 “아버지 때부터 대를 물려 33년간 관광호텔을 운영하며 외화벌이에 일조한다는 자부심으로 버티지만 지원은 없고 부담만 있는 현실에 좌절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 고정비용에 인력부터 줄이는 호텔

최근 한국관광협회중앙회는 TV수신료 징수제도 개선을 비롯해 조세특례제한법상의 감면혜택 확대, 재산세 분리과세 허용 등을 요구하는 ‘관광산업 규제 완화 제도개선 과제’ 건의문을 문화체육관광부에 제출했다.

이 중 호텔을 지을 때 일정 규모 이상의 주차장을 확보하도록 한 규정은 관광호텔의 발목을 잡는 대표적 ‘가시’ 중 하나다. 삼원프라자호텔은 신축 당시 호텔 건너편에 70여 대를 수용할 수 있는 4층짜리 옥외주차장을 지었다. 현행 주차장법 시행령에 따르면 숙박시설은 200m²당 한 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이 주차장은 승용차만 이용할 수 있게 낮게 지어져 요즘 필요한 관광호텔 주차에는 쓸모가 없다. 게다가 손님 대부분이 관광버스 택시 도보로 호텔을 찾기 때문에 승용차 주차장은 텅텅 비어 있을 때가 많다.

이 호텔의 이명일 이사(63)는 “외국인 단체손님은 버스운전사가 관광객과 함께 투숙하는 경우가 많아 관광버스 주차시설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하지만 규정에 맞춰 주차장 시설을 만드느라 관광버스 주차장을 지을 여력이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호텔은 요즘 주변 웨딩홀 주차장에 별도 주차비를 내고 관광버스를 대도록 하고 있다.

○ 일자리 창출능력 탁월한 관광·숙박업

‘굴뚝 없는 공장’의 대표격인 관광숙박업은 인력에 의한 서비스기반 산업으로 다른 산업에 비해 일자리 창출능력이 월등히 높다. 전문가들은 정부 목표대로 2016년에 외국인 관광객 1200만 명을 돌파하면 지금보다 1만6400개의 객실이 더 필요할 것으로 본다. 특급호텔 기준으로 객실 한 개가 늘어날 때 1.1명의 직원이 더 필요한 걸 감안하면 1만8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수 있는 것.

하지만 호텔업계 관계자들은 이런 전망이 현실화되려면 호텔을 짓는 것만큼 호텔이 인력을 뽑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광호텔을 짓는다 해도 초기 투자비용과 운영비용이 많이 들다 보니 인력을 채용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경기개발연구원이 발간한 ‘호텔업 육성을 위한 5대 전략’에 따르면 호텔업은 접근성이 좋은 요지에 입지하는 경향이 있어 땅값이 비싸고, 인테리어 가구 등 설비도 많이 필요해 초기 투자비용이 많이 든다. 이에 비해 수익은 장기간에 걸쳐 발생한다. 2010년 경기도에 있는 1등급 호텔의 평균 이익률은 2.2% 정도로 설비투자와 인력채용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탓에 최소한의 숙박시설만 갖춘 ‘잠만 자는 호텔’이 늘고 있다. 서울 도심에 관광호텔을 짓는 사업자 A 씨는 “밀려드는 관광객을 받기 위해 호텔 수만 무조건 늘리다간 호텔이 잠만 자는 기능적인 면에 그치게 된다”며 “최고급 서비스를 자랑하는 해외 관광지의 호텔들과 경쟁해 외국인 관광객이 다시 방문하도록 하려면 호텔들이 ‘인적(人的) 서비스’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 규모보다 서비스 질로 호텔 평가해야

중소 관광호텔업계는 호텔산업의 활성화를 위해 호텔설립 규제완화와 함께 각종 부담금 감면이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외국인 관광객에게 제공하는 숙박 서비스와 음식에 대해 부가가치세를 면제해 주는 ‘영세율’의 재도입이 꼭 필요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관광숙박업의 가격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1977년 처음 영세율을 도입했지만 폐지와 적용을 반복하다 2010년 세제개편과 함께 다시 영세율을 폐지했다. 외국인 관광객 유치 실적이 높은 호텔에 전기료, 가스요금 등을 일시적으로 감면해 주던 혜택도 사라졌다.

또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규모 중심인 호텔 등급심사기준의 개선도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의 호텔 평가의 주요 기준은 △객실 면적과 수 △욕실면적 △식당면적 △국제회의시설 및 로비면적 △현관 앞 주차공간 등이다. 반면 관광선진국인 유럽, 미국의 호텔 등급평가는 숙박 및 식음 서비스의 질을 최우선 순위로 둔다. 객실 수가 적어도 고객이 만족할 만한 서비스를 제공하면 높은 등급을 받을 수 있는 것.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의 김현주 연구위원은 “지금은 특1급부터 3급 호텔까지 평가에서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며 “서울과 수도권에 다양한 형태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숙박시설이 늘어나고 있는 만큼 심사기준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 관광학과 학생 ‘구직난’… 소규모 호텔은 ‘구인난’ ▼

특급호텔 외엔 취업질 낮아… 업계 관광학과 출신 5%뿐


2001년 방영된 드라마 ‘호텔리어’는 호텔 직원들의 일과 사랑을 그려 높은 인기를 끌었다. 이 드라마 등을 계기로 2000년대 초반부터 호텔 일자리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졌고 각 대학 호텔, 관광 관련 학과의 경쟁률도 치솟았다. 하지만 한국을 찾는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요즘 호텔, 관광 관련 학과를 졸업한 사람들 가운데 이 분야에 남아서 일하는 사람의 비중은 오히려 줄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이 지난해 10월 펴낸 ‘관광산업 인적자원 육성정책 체계화 방안’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4월 기준으로 총 199개 대학에 관광 관련 학과가 개설돼 있고 재학생은 8만여 명이나 됐다.

그러나 관광 분야에서 일자리를 구한 사람 중 4년제 대학의 관광학과 출신은 5.1%에 그쳤다. 반면 관광학과 이외의 타 학과 출신 비율이 94.9%로 높게 나타났다. 4년제 관광학과 졸업생은 오히려 경영·회계·사무직(32.1%)에 가장 많이 진출했으며 금융·보험직(20.4%), 영업·판매직(11.7%), 미용·숙박여행·오락스포츠 관련직(11.4%)이 뒤를 이었다.

관광 분야 전공자들이 전공을 살리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큰 원인은 근무여건에 비해 대우가 좋지 않다는 점이다. 2009년 한국 고용정보원의 조사에 따르면 관광숙박업의 월평균 소득은 189만 원으로 제조업 평균에 못 미쳤다. 평균 근속연수도 6.2년으로 전체 근로자 평균보다 2년 이상 짧았고 이직률도 다른 직종보다 높은 편이었다.

게다가 전공을 살려 호텔에 취업하고 싶어도 특급호텔 취업의 문은 바늘구멍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관광호텔 관련 학과 4년제 대학 졸업자의 눈높이가 특급호텔에 맞춰져 있지만 실제 채용은 소규모 호텔 중심으로 이뤄지는 점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한 호텔업계 관계자는 “호텔, 관광을 전공한 후 외국에서 인턴 경험을 쌓고 한국에 돌아왔지만 취업이 어렵고 대우도 열악해 금융권 등으로 진출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반면 수도권 중소 규모의 관광호텔은 인력난에 시달리고 있다. 삼원프라자호텔의 최기환 총지배인은 “채용할 여력이 생겨도 원하는 인력을 뽑는 게 하늘의 별따기”라고 했다.

호텔전문기업 라미드 에이치엠(HM)의 신상균 대표는 “고급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호텔 분야에서 이직률이 높고, 직무만족도가 떨어지다 보니 인적 서비스 경쟁력이 점점 낮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다”며 “호텔을 많이 짓는 것과 동시에 종사자들에 대한 처우개선 등을 통해 서비스의 질을 끌어올릴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

▼팀장

박중현 경제부 차장

▼팀원
유재동 문병기 박재명 김철중(경제부) 김희균 이샘물(교육복지부) 염희진(산업부) 김동욱 기자(스포츠부)
#중소 관광호텔#삼원프라자호텔#안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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