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대통령은 이날 과거 그 어떤 기자회견 때보다 굳은 표정이었다. 한 문장을 마칠 때마다 입술을 다부지게 꽉 다물기도 헸다.
정부조직법 처리 지연을 두고 ”이것은 헌정 사상 초유의 일입니다”라고 말할 때는 목소리가 떨렸다. “한시가 급하고 분초가 아까운 상황이다”라고 말할 때는 검지로 단상을 몇 차례 치기도 했다. “조국을 위해 들어오는 인재들을 더이상 좌절시키지 말아야 합니다”라는 부분은 한마디 한마디 끊어서 읽으며 강조했다. “이미 수많은 소셜미디어와 인터넷 언론이 넘치는 세상에 정부가 방송을 장악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라고 반문할 때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야당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는 속내를 내비치기도 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춘추관을 찾아 대국민 담화를 했다. 당초 본관에서 방송사 한 곳만 불러 담화를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했으나 직접 춘추관을 찾는 것으로 결정됐다.
좀체 감정을 드러내지 않는 박 대통령이 이날 전 국민이 보는 TV 생중계로 현 정국 상황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 없이 밝힌 이유는 복합적이라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설명이다.
담화의 톤에 가장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건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사퇴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핵심 참모는 “박 대통령의 어조가 그토록 강경해진 데는 김 후보자의 사퇴가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또 김 후보자의 사퇴 의사를 보고받은 시점이 전날 오후였으며 담화 결정 자체에도 영향을 줬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통령은 전날 김 후보자의 사퇴 의사를 접하고 수차례 간곡하게 만류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 후보자가 끝까지 사퇴 의사를 굽히지 않자 현 정치 상황에 대한 불만과 김 후보자에 대한 섭섭함 및 안타까움 등이 한꺼번에 밀려왔다는 것.
일각에서 “박 대통령이 정부조직법 통과를 위한 여론을 선점하기 위해 김 후보자를 희생양으로 삼은 것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데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0.0001%도 가능성이 없다. 박 대통령이 얼마나 말렸는지 알면 그런 이야기를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제안한 회동조차 거절하는 야당은 물론이고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하는 여당에 대한 불만도 큰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오죽 답답했으면 야당의 반발로 인해 자신에게 장기적으로 손해라는 걸 알면서 담화를 했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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