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민주통합당 내부에선 이 같은 말로 답답함을 토로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의 ‘양보 불가’ 방침으로 정부조직법 개정안 협상이 지지부진해 협상의 내용과는 별개로 ‘발목 잡기 야당’이란 이미지가 되살아나고 있는 데다, 안 전 교수가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운신의 폭이 좁아진 까닭이다.
민주당 관계자는 5일 “박 대통령이 민주당을 직접 공박하는 얼음장 같은 대국민 담화(4일)를 하지 않았다면 당내 분란이 일었을 것”이라고 했다. 꼬인 정국을 제대로 풀어 내지 못하는 지도부의 리더십에 대한 불만이 켜켜이 쌓이면서 “그만 양보해 줄 때가 됐다”는 의견이 분출될 순간 “타협은 없다”라고 대통령이 배수진을 치면서 당이 구심력을 되찾았다는 것이다. 한 의원은 “당이 출구전략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는 피로감을 호소하는 의원이 많았지만 박 대통령의 담화 이후 불만들이 쑥 들어갔다”고 말했다. 그는 “바깥의 위협이 내부의 불만을 가라앉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부담은 커질 것”이라는 걱정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안 전 교수의 ‘귀환’은 민주당을 벼랑 끝으로 몰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를 통해 쇄신과 혁신을 외치고 있지만 전당대회 룰, 대선 평가 등을 놓고 각 계파가 여러 갈래로 찢어져 단합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안 전 교수가 다시 ‘새 정치’를 내세우며 돌아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당장 4·24 서울 노원병 보선에 당 소속 후보를 내야 하느냐, 말아야 하느냐를 놓고 논란이 분분하다. 여기에 노원병에서 의원직을 상실한 진보정의당과, 대선 당시 연대했던 안 전 교수의 눈치까지 보게 됐다. 4·24 재·보궐선거 열흘 뒤 열리는 5·4 전당대회도 ‘안철수’의 자장(磁場) 아래서 진행될 수밖에 없다. 전당대회 과정에서 안 전 교수와의 관계 설정이 전당대회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다. 또 당 대표에 당선되더라도 임기 내에 ‘안철수발(發)’ 정계개편에 휘말릴 개연성이 높다.
전문가들은 자칫 민주당이 박 대통령과 안 전 교수 사이에서 샌드위치 신세가 돼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가 될 수 있는 만큼 돌파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발목 잡지 않는 야당이 되겠다”던 다짐이 무색해지지 않도록 일단 주방장(박 대통령)이 밥(정부조직 개편)을 지을 수 있도록 하고 지켜보자는 것이다.
노무현 정부 때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은 민주당 주장이 맞지만 지금은 양보하고 나중에 문제가 현실로 드러나면 책임을 묻는 것이 옳다”고 말했다. 장관 출신 민주당 한 의원은 “판단이 잘 안 설 때는 정부, 여당이 하자는 대로 해주고 문제가 명확해지면 두들겨 패는 것이 야당으로서는 최선의 전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국민들은 쟁점이 되고 있는 정부조직법상의 방송관할권 문제가 출범을 맞은 정부의 장기 공백을 정당화할 만큼 나라를 흔들 사안이냐며 비판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현 국면이 장기화되면 민주당이 수권정당, 대안정당 이미지를 쌓기가 어려워질 수 있는 만큼 당 지도부가 속히 리더십을 발휘해 대치정국을 타개하고 당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오너십을 형성해 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철희 두문정치연구소장은 “‘발목 잡지 않는 대안야당’을 표방하면서도 ‘당 혁신’이라는 자기 할 일에 집중해야 결과적으로 안철수란 외부 요인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한편 안 전 교수는 11일 오후 5시 35분 인천공항에 도착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안 전 교수는 공항에서 4월 재·보선 출마 결심 배경, 신당 창당 여부 등에 대한 생각을 밝힐 예정이다.
안 전 교수의 최측근인 송호창 의원(무소속)은 보도자료를 내고 “야권은 대안과 비전이 아닌 ‘반대의 연합’을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요구했지만 이런 방식으로는 새로운 정치도, 거대 여당을 뛰어넘는 대안 세력의 성장도 가능하지 않다”고 말했다. “더이상 안철수는 민주당의 조력자가 아니다”라며 커밍아웃을 한 동시에 민주당에 대한 선전포고를 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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