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급여 비용중 선택진료비가 35.8%… 평생치료 눈앞 캄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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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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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소득 희귀난치성질환자 진료비 첫 실태 분석

이성민(가명·15) 군은 심장 기능에 이상이 생기는 ‘확장성 심근병증’ 진단을 받았다. 첫돌 무렵이었다. 그동안 여러 차례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12월에는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심장이식 수술을 받고 2개월간 입원했다. 퇴원할 때 명세서에 찍힌 진료비는 7669만7267원. 이 군 가족이 실제 부담한 돈은 2079만3134원이었다.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진료로 65만107원을 냈다. 나머지 2014만3027원은 모두 비급여였다. 비급여 진료비의 절반에 가까운 982만8019원이 선택진료비였다. 본보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의 조사에서도 비급여 진료비의 35.8%가 선택진료비였다.

이 군의 부모는 작은 떡집을 운영하며 한 달에 300만 원 남짓 번다. 7개월을 벌어야 환자 부담분을 겨우 낼 수 있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에서 500만 원을 지원받았지만 모자란 진료비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지인에게서 돈을 빌리고 신용카드를 사용해 나머지 금액을 냈다. 가족들은 “빚이 벌써 1억 원이나 쌓였는데…”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군은 6월까지 학교에도 가지 못하고 집에서 간호를 받아야 한다. 매달 한 번씩 입원한 후 조직검사와 약물치료도 받아야 한다. 이 군의 어머니는 “선택진료비만 좀 적어도 어떻게든 해 보겠는데, 걱정이 태산이다”라고 말했다.
○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4대 중증질환(암·심장·뇌혈관·희귀난치성)은 치료도 어렵지만 진료비 또한 유난히 많이 든다.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비급여 진료 비중이 커서다.

정부는 꼭 필요한 항목은 건강보험을 100% 적용하겠다고 밝혔지만 환자들은 떨떠름한 표정이다. 가장 부담이 큰 선택진료비, 상급병실료 차액, 간병비 등 3대 비급여 항목이 제외됐기 때문.

특히 희귀난치성질환자의 고통이 더 크다. 질병 자체가 생소해 소수의 대학병원 교수만 치료할 수 있으니 선택진료비 부담이 커진다. 선택진료비는 전문의 자격을 따고 10년이 지난 의사에게 진료를 받을 때 내는 돈이다. 질병의 고통에, 진료비 고통까지 이중고에 시달리는 셈이다.

박영훈(가명·51) 씨도 마찬가지. 지능이 두 살짜리 아이와 비슷하다. 버드-키아리 증후군이다. 간에서 피를 보내는 정맥이 좁아지거나 막히는 희귀질환. 비정상적으로 간이 커지고, 배에 물이 찬다.

사업으로 정신이 없던 1988년, 숨을 잘 못 쉬는 증상이 나타나 병원을 찾았다가 이 병을 진단받았다. 지속적으로 치료를 받았지만 병세는 호전되지 않았다. 하루가 멀다 하고 복수가 차고 다리가 부었다. 사업을 관두고 대리운전, 주차관리 일을 시작했다.

병세가 심해져 몸이 아플 때마다 일을 하지 못했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죽기 살기로 일에 매달렸지만 한 달에 50만∼60만 원밖에 못 버는 생활이 반복됐다.

지난해 심장수술을 받은 뒤부터는 기약도 없이 입원이 길어졌다. 하반신이 마비돼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 또 지능이 크게 떨어져 말도 제대로 못한다.
○ 가족 해체에 저소득층 추락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내와 헤어졌다. 세 아이도 엄마와 살겠다며 집을 떠났다. 혼자 남은 박 씨는 누나 집에서 지내고 있다. 노모(79)가 하루 종일 기저귀를 갈아주고 거동을 돕는다. 어머니 역시 2년 전에 당뇨 합병증으로 대학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을 정도로 몸이 좋지 않다.

“이 병을 앓은 뒤로 집안이 풍비박산 났습니다.” 희귀난치성질환자의 가족이 공통적으로 하는 말이다.

환자와 가족 모두 괴로운 이유는 평생 진료를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한 번 수술을 받으면 완치까지 가능한 다른 중증질환과 가장 크게 다르다. 희귀질환에는 완치 개념이 없다.

그러나 치료를 안 받을 수는 없다. 치료를 중단하면 상태가 악화돼 목숨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처럼 의료비를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다.

환자 자신이 우선 일을 하기 어렵다. 진료비는 갈수록 불어나니 간병인을 따로 두려는 생각조차 하기 힘들다. 가족이 하루 24시간 환자 옆에 붙어 있을 수밖에 없다. 가족의 수입 역시 확 떨어지게 된다.

박 씨 또한 버드-키아리 증후군에 걸린 후 차상위계층으로 추락했다. 이런 점을 들어 희귀난치성질환에 대해서는 건강보험 혜택을 늘려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신현민 한국희귀난치성질환연합회 회장은 “암은 민간보험이라도 많이 나와 있지만 희귀난치성질환은 건강보험에 매달릴 수밖에 없다. 꼭 필요한 검사비와 의료용품, 선택진료비에 대해 건강보험을 적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 희귀난치성질환 ::

국내 환자가 2만 명 이하이면서 적절한 치료 방법이 개발되지 않은 병을 뜻한다. 종류가 너무 많아 질병의 개수나 발생률을 체계적으로 파악하기 어렵다. 세계적으로 6000여 종, 국내에는 2000여 종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국내 환자는 모두 합쳐 50만 명 정도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38만1576명(2011년 기준)이 산정특례로 지정돼 건강보험 진료비의 10%만 낸다. 치료는 물론이고 진단 자체가 어려워 중증장애로 악화되는 경우가 많다. 전문적으로 진료할 의료진이나 기관도 크게 부족하다.

이샘물 기자 evey@donga.com
#저소득#희귀난치성질환자#진료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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