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법무부 차관이 21일 사표를 내면서 박근혜 정부의 인사시스템에 구멍이 났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 차관의 사임은 현 정부 출범 후 김종훈 전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 황철주 전 중소기업청장 내정자에 이은 세 번째 ‘인사 사고’다. 인선이 이뤄진 지 김 차관은 8일 만에, 김 전 후보자는 15일 만에, 황 전 내정자는 3일 만에 각각 물러났다. 정부 출범 전에는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후보 지명 5일 만에 사퇴하기도 했다.
새로 출범한 정부에서 장차관급 고위인사들이 이처럼 줄줄이 사퇴한 전례가 없다. 이명박 정부 출범 당시 세 명의 장관 후보자가 사퇴했지만 이는 국회 인사청문회의 벽을 넘지 못한 것이어서 이번과는 경우가 다르다는 지적이다. 박 대통령의 ‘나 홀로 인선’ 스타일과 인사검증을 하는 민정라인의 ‘무사안일’이 빚은 사고라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김 차관과 관련한 소문은 최소 한 달 전부터 사정 당국에 공공연히 퍼져 있었다. 일각에선 수개월 전부터 소문이 돌았다는 주장도 있다. 실제 증권가에 나도는 정보지에는 이미 6개월 전 유사한 내용이 실리기도 했다.
청와대 인사검증팀의 핵심 관계자는 “김 차관을 임명하기에 앞서 민정수석실에서도 소문을 듣고 본인과 경찰 수뇌부에 확인했지만 사실 무근이라고 해 별문제가 없는 줄 알았다”며 “경찰이 수사를 시작한 것도 아니어서 소문의 진위를 구체적으로 확인하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민정수석실에서는 본인의 해명과 경찰 수뇌부의 보고만을 믿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지난주 언론 보도 후 민정수석실에서 이 사건의 첩보를 수집하고 내사해온 경찰 실무자의 보고를 받으면서 상황은 달라졌다고 한다. 경찰 수뇌부의 보고와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곽상도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서 이런 사실을 보고받은 뒤 사전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데 대해 질책했다는 말도 들린다. 유임이 확실했던 김기용 전 경찰청장이 교체된 것도 이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다.
민정수석실이 김 차관을 내정한 13일 이전에 박 대통령에게 성접대 소문을 보고했는지도 분명치 않다. 일각에선 인선 전에 보고가 이뤄졌지만 박 대통령이 “동영상이 있느냐”는 취지로 질문을 했고, 곽 수석이 “경찰에서 없다고 한다”고 답변하자 인선을 강행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하지만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성접대 스캔들이 언론에 크게 보도되기 전까지 박 대통령은 아예 몰랐던 것 같다”고 밝혀 민정라인에서 묵살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잇따른 인선 사고로 민정라인 책임론이 불거지는 상황에서 만약 보고조차 안 했다면 책임론은 더 확산될 수밖에 없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이기준 전 교육부총리가 서울대 총장 시절 사외이사 겸직 논란 등에 휘말려 취임 사흘 만에 낙마하자 노 대통령은 박정규 민정수석과 정찬용 인사수석의 사표를 수리한 전례도 있다.
보안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박 대통령의 인선 스타일도 ‘검증 구멍’의 한 요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몇몇 사람들이 인사를 독점하지 못하도록 인사위원회까지 만들었지만 박 대통령이 대부분 단수 후보로 검증을 주문하면서 시스템 인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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