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임 6일 만에 사퇴하는 김학의 법무부 차관(57·사법연수원 14기)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고 법무부 검찰3과장(공안 담당)과 대검찰청 공안기획관 등을 거친 대표적인 엘리트 공안 검사였다. 그러나 검찰 내부에선 그를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로 생각하거나 법무부 차관에까지 오를 인사로 생각하는 검사는 많지 않았다. 조직의 수장을 꿈꾸는 여느 검찰 간부들처럼 엄격하게 스스로를 관리하기보다는 유연한 모습이 두드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상 처음으로 구성된 검찰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인 1월 말부터 김 차관(당시 대전고검장)이 유력한 검찰총장 후보로 떠올랐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 당선인이 검찰과 법원에 직접적인 인맥을 갖고 있지 않은 상황에서 당선인의 측근들이 김 차관을 강력히 추천했다는 설이 유력하게 나왔다. 인사권자인 박 당선인이 당시 실제로 김 차관을 선호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만 박 당선인 측이 김 차관에게 호감을 갖고 있다는 징후는 뚜렷하게 감지됐다. 박 당선인 측이 어떤 이유로 김 차관에 대해 호감을 갖게 됐는지는 잘 알려지지 않는다. 총장 후보로 거론되는 다른 인사들과 달리 유연하게 청와대와 소통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점, 김 차관이 정치권에 두터운 인맥을 쌓아온 점 등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그러나 지난달 7일 총장후보추천위원회가 ‘반란’을 일으켰다. 청와대에서 점찍어 둔 것으로 알려진 김 차관과 안창호 헌법재판소 재판관을 후보 3명 명단에서 탈락시켰다. 현직 재판관이었던 안 재판관이 총장 인사 검증에 동의한 사실이 동아일보 보도로 알려진 뒤 추천위의 역할에 관심이 집중되면서 일종의 ‘소신 추천’이 이뤄진 것이었다. 추천위의 반란에 법무부는 당황했고 박 대통령은 무척 언짢아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청와대에선 ‘법무부가 일 처리를 제대로 못했다’는 책망까지 들렸다. 그러면서 추천위를 다시 개최하는 방안이 거론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움직임을 본보가 기사화하면서 재개최 역시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결국 총장 후보에 김 차관의 이름은 포함되지 못했다.
이후 검찰 구성원들은 김 차관 등 채동욱 총장 후보자의 연수원 14기 동기들은 모두 옷을 벗을 거라고 생각했다. 동기가 총장이 되면 지휘권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동기들이 모두 퇴임하는 것이 관행이었다.
그러나 청와대는 15일 김 차관을 전격적으로 법무부 차관으로 임명했다. 이 일은 ‘추천위의 반란’만큼 놀라운 사건이었다. 검찰 내부 여론은 급속도로 악화됐다. 검찰 내부에선 ‘동기가 총장에 내정됐는데 차관 직을 받아들인 것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 법무·검찰 내부 논리와 인사 관행을 무시하고 김 차관을 임명한 청와대에 대한 기류도 냉랭했다. 청와대 주변에서는 ‘김 차관을 차기 법무부 장관으로 임명하려 한다’는 말까지 흘러나왔다. 이는 ‘실세 차관’이라는 말로까지 이어졌다. 결과론이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김 차관이 총장 후보에 포함되지 못했을 때 차관 제의를 거절하고 명예롭게 물러났어야 ‘아름다운 결말’이 됐을 거라는 의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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