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X파일의 X파일]비계에서 떼어낸 ‘쓰레기 고기’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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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주인 행세 끝에 찾아낸 ‘칼밥’에는 꽁초와 곰팡이가…

“정육점에서 일해 봤거든요. 딱 ‘촉’이 왔습니다.”

1월 25일 방영된 ‘쓰레기 고기’ 편을 담당했던 ‘먹거리 X파일’ 구장현 PD(33). 버려진 비곗덩어리에 남아 있는 살코기를 발라내 식당에 유통시키는 충격적인 현장을 고발한 PD다. “1월 초 아귀찜을 취재하다 식당 주인에게서 황당한 소리를 들었어요. 육절기 사용 후 기계 사이에 낀 고기 톱밥(찌꺼기)으로 떡갈비를 만든다는 얘기였어요. 순간 정육점에서 일했던 시절이 생각났죠.”

구 PD는 2004년 제대 후 6개월가량 마트에서 정육점 코너를 운영하는 매형을 도운 적이 있다. 그때 육절기 사용법을 익혀 고기도 썰어봤다. 그래서 식당 주인이 ‘고기 톱밥’이라는 업계 전문 용어를 말했을 때 즉각 알아들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구 PD는 일주일간 서울 광화문 일대의 정육점 수십 곳을 취재했다. 하지만 만나는 정육점 주인마다 “톱밥은 못 쓴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취재를 포기하려던 차에 새로운 이야기를 들었다.

“아니 젊은이, 고기 톱밥으로 어떻게 떡갈비를 만들어? ‘칼밥’이면 모를까.”

‘칼밥’은 고기와 뼈, 비계를 칼로 분리하고 나서 비계에 남은 살코기를 뜻하는 용어다. 구 PD는 서울 마장동 축산물 시장 일대를 뒤지기 시작했다. 마장동 상인들이 취재진을 꺼릴까 봐 철저히 식당 주인 행세를 했다. 등산복에 운동복 바지를 입고 요식업계에서 쓰는 비어, 속어를 외운 후 칼밥을 파는 정육점을 찾아 나섰다.

취재 3일째. 돼지 부속물을 파는 아주머니를 통해 칼밥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구 PD가 “이모, 이모. 제가 운영하는 식당에서 쓸 칼밥 좀 찾고 있어요”라며 살갑게 말을 걸자 ‘이모’가 뜻밖에 유지수거업체를 바로 소개해준 것. 정육점에서 버린 비곗덩어리는 자루에 담겨 유지수거업체로 보내진다. 이후 정제와 가공 과정을 거쳐 화장품과 비누의 원료로 사용된다.

“돼지 부속물을 파는 아주머니를 이모라고 부르며 돌아다니자 마장동 유지수거업체 주인들도 실제 조카인 줄 알고 경계를 풀더군요. 그러고는 쓰레기 고기를 보여줬어요. 고기를 보니 말이 안 나왔습니다. 비계 사이에는 종이컵, 휴지, 담배꽁초가 섞여 있었고 곰팡이까지 피어 있었죠. 설마 이런 비계들에서 살코기를 발라내 식당으로 보낼까란 의심까지 했다니까요.”

구 PD는 유지수거업체 주인과 동네 슈퍼마켓에서 강소주를 마시며 쓰레기 고기가 유통되는 식당들도 취재했다. 유지수거업체 주인은 술에 취하자 “이건 비밀인데…나도 비계에서 떼어낸 고기를 식당에 유통했다가 2번이나 걸렸어”라며 은밀히 이뤄지는 불법 행위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이후 구 PD는 경찰 지능수사팀과 동행해 유지수거업체들의 쓰레기 고기 제작 현장을 잡는 데 성공했다. “제가 주로 쓰레기 음식을 많이 취재하다 보니 먹거리 X파일 팀 내에선 쓰레기 전문으로 통해요. 앞으로도 쓰레기 음식을 불법적으로 사용하는 식당이나 업체를 열심히 고발하겠습니다.”

김윤종 기자 zozo@donga.com
#먹거리X파일#쓰레기 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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