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업들은 서울이 폭격당할 수 있다는 사실은 생각하지만 정작 그에 대비해 조치를 취하는 건 거의 없어요. 심각한 사건이 실제로 발생해야만 경각심을 느끼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IBM의 위기관리경영 전문가인 스콧 램지 수석컨설턴트는 20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국 기업들의 위기관리 수준에 대해 이렇게 평가했다. 그는 남북 간 긴장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삼성화재와 한국IBM이 공동 주최한 비즈니스 연속성 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그는 전쟁, 천재지변 등 기업이 예측하기 어려운 위기에 직면했을 때 사업을 유지하기 위한 예방책을 마련하고 취약점을 보완하는 전문가로, 위기관리 분야에서만 35년간 일했다.
램지 씨는 한국 기업의 위기관리 방향이 사업 유지에만 기형적으로 맞춰져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만약 서울에 폭탄이 떨어지는 상황을 가정한다면 (사업 유지보다) 중요한 것은 직원과 직원 가족의 생존”이라고 말했다. 직원이 있어야 기업도 유지하고, 사업도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국 기업은 비상시를 대비한 사업 유지 계획은 세우면서도 직원 보호에는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게 그의 지적이다.
한국 기업의 정보기술(IT) 분야 대응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데이터는 해외를 포함해 여러 곳에 나눠 저장하는 것이 중요한데 기업들은 비용을 아끼겠다며 이를 소홀히 한다는 것이다. 특히 사이버테러 위협도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이런 데이터 분산 저장은 기본 중의 기본이 되고 있다는 게 램지 씨의 설명이다.
한국 기업들의 IT 백업이나 위기 대응수준을 평가해 달라고 하자 그는 “내가 만나본 한국 기업들로만 얘기하자면 5점 만점에 0∼3점 수준”이라며 “해외에는 5점 만점을 줄 기업들이 많은데 한국에선 한 곳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한국과 대비되는 사례로는 이스라엘을 꼽았다. 항상 안보 위협에 시달리고 있는 이스라엘에서는 위기관리가 일상이란 것이다. 특히 이스라엘 기업 대부분은 사업을 키우기 시작하면 바로 해외에 기업의 시설과 영업능력을 분산시켜 둔다고 강조했다. 중요한 데이터를 해외에 백업해두면 폭격으로 자국의 전산시설이 파괴된다 해도 금세 복구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램지 씨는 “재난 상황에서 기업이 정상적인 영업을 잠시라도 중단하면 요즘 같은 속도경쟁 시대에선 바로 경쟁자에게 시장을 잃게 된다”며 “위기 대응을 소홀히 한 기업은 극단적 재난 상황이 닥쳤을 때 대부분 24개월 내에 문을 닫는다는 통계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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