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8일 올해 일자리와 성장률 전망치를 충격적인 수준까지 끌어내리면서 박근혜 정부의 임기 첫해부터 경제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당장 경기침체의 영향으로 막대한 세수(稅收) 부족이 현실화할 조짐이고 복지 확대로 인한 지출 수요는 급증하면서 재정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이런 현실에 대응해 정부는 △부동산 시장 대책 △투자활성화 방안 △서비스산업 발전방안 등 굵직한 ‘정책 패키지’를 상반기에 잇달아 내놓을 방침이다. 지난 정부가 임기 말 미세한 정책조정에만 집중했던 것과 달리 선 굵은 대책으로 대내외 경제 악재에 대응하겠다는 뜻이다. 검토 중인 추가경정예산 규모가 당초 예상보다 훨씬 커진 것도 정부의 이런 상황인식을 반영하고 있다는 해석이 많다. ○ 취업자 증가폭 2009년 이후 최저
기획재정부가 이날 내놓은 올해 경제 전망은 대단히 암울하다.
정부의 올해 취업자 증가폭 전망치(25만 명)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였던 2009년(―7만2000명) 이후 가장 낮다. 새로 만들어지는 일자리가 크게 줄어든다는 의미다.
이미 지난달 취업자 증가 규모가 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져 박 대통령의 핵심 공약인 ‘임기 내 고용률(15∼64세) 70%’ 달성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고용률을 2017년에 70%로 끌어올리려면 5년간 매년 50만 개의 일자리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
지난해에는 경기침체 속에서도 자영업 창업 등의 영향으로 취업자가 44만 명이나 늘어 ‘고용 미스터리’라는 말까지 나왔다. 하지만 기업의 신규 채용 감소, 자영업자 감소세 전환 등의 요인이 겹쳐 올해는 이런 현상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정부의 예상이다.
성장률 전망도 처참한 수준이다. 정부는 지난해 9월 2013년도 예산안을 발표하면서 올해 성장률을 4.0%로 예상했지만 3개월 뒤인 12월에 3.0%로 낮췄고 석 달 만에 다시 2.3%로 떨어뜨렸다. 반 년 새 성장률 전망이 반 토막 난 것이다.
6개월 전 정부는 지난해 3분기(7∼9월)를 ‘경기 바닥’으로 보고 수출과 내수가 조금씩 살아날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지난해 4분기(10∼12월)까지 7개 분기 연속 전기(前期) 대비 0%대 성장을 이어가는 등 현실은 전망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였다.
올해 들어서도 기업 생산과 투자, 소비 등 주요 경기지표가 모두 흔들리며 지난해 말과 비슷한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최상목 재정부 경제정책국장은 “경제가 하반기로 갈수록 좋아질 것이라는 확신이 최근 몇 달 사이 더 줄었다”면서 “이번 성장률 전망은 ‘목표치’가 아니라 실제 ‘전망치’”라고 설명했다. ○ 국가재정 10조 원 이상 ‘펑크’
불황에 따른 세수 감소와 재정건전성 악화도 ‘발등의 불’이다. 이날 정부는 “달라진 경제환경에 따라 세입 여건을 재점검해 보니 올해 국세 수입이 당초 계획보다 6조 원가량 줄어들 것으로 전망됐다”고 밝혔다. 이마저도 올해 성장률을 3%로 가정해 계산한 것이어서 정부가 낮춘 전망치 2.3%를 적용하면 세수 감소분은 더 커진다.
정부가 세금 외에 들어올 수입으로 잡아놓은 7조7000억 원도 공기업(산업은행 기업은행) 주식 매각 지연 등으로 올해 안에 실제 수입으로 이어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새 정부가 시작부터 나라 곳간에 10조 원 이상 구멍을 안고 출발하는 셈이다.
이날 정부가 세입 감소와 경기침체에 대응하기 위한 추경 편성을 공식화함에 따라 사실상 ‘균형재정’ 기조는 깨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재정부에 따르면 추경을 10조 원만 편성해도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폭은 1% 이상으로 늘어난다.
또 추경예산의 상당 부분이 부족한 세수를 보충하는 데 쓰이게 돼 충분한 경기진작 효과를 내려면 추경의 규모는 훨씬 더 커져야 한다. 추경 규모에 대해 현오석 부총리 겸 재정부 장관은 “아직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시장에 경제회복의 확신을 줄 수 있는 정도로 짜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날 경제부처합동 브리핑에서 ‘산을 만나면 길을 트고 물을 만나면 다리를 놓는다’는 뜻의 ‘봉산개도 우수가교(逢山開道 遇水架橋)’라는 말을 인용하며 “어떤 난관에 부닥쳐도 굳은 의지로 한발 한발 나아가자”고 호소했다. ○ 민생 대책 줄줄이 쏟아내
정부는 일자리 창출, 민생안정, 경제민주화 등 기본적인 정책방향과 함께 정권 초기에 집중적으로 추진할 ‘100일 액션플랜’을 공개했다. 우선 다음 주 부동산시장 대책, 4월 추경예산의 구체적인 방안을 각각 밝히고 5월에는 내수 및 투자 활성화 대책을 마련하기로 했다. 부동산 대책에는 취득·양도세 등 세 부담 완화와 실수요자 주택자금 지원, 각종 규제 완화 등의 내용이 담길 예정이다. 투자 관련 대책으로는 중소기업의 중고 설비 교체 지원, 외국인 투자를 위한 투자이민제 확대 등이 추진된다.
‘창조경제’의 밑그림도 새로 그렸다. 창업 및 벤처기업 활성화를 위해 공공기관이 많은 투자위험을 부담하는 ‘한국미래창조펀드’를 조성하기로 했다. 소프트웨어 관광 보건의료 등 ‘창조형 서비스업’ 지원을 제조업 수준으로 강화하고 이들의 연구개발(R&D) 투자에 대한 세제 지원도 대폭 늘리기로 했다.
물가대책 중에서는 지난 정부의 트레이드마크였던 품목별 물가관리제(MB물가)를 폐지한다는 내용이 눈길을 끈다. 그 대신 유치원비 등 핵심 품목의 물가조사를 소비자단체에 맡기고 유통구조 개선 대책을 마련한다. 저출산 대책으로는 임신 기간 근로시간 단축제와 출산일로부터 90일 이내에 30일의 남성 출산휴가를 주는 ‘아빠의 달’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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