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북한은 ‘성가신 존재’라는 생각밖에 안 든다. 그들과의 통일이 필요한가.”(20대 취업준비생)
“내 가족에게 쓸 돈도 빠듯하다. 나랑 상관없는 북한 사람들을 위해 내 돈 쓰기 싫다.”(30대 주부)
20대는 통일 실현 가능성과 필요성에 대해 가장 비관적이고, 30대는 통일 준비를 크게 부담스러워했다. 동아일보의 창간 93주년 기념 통일 의식 여론조사 결과다.
전문가들은 “20, 30대야말로 통일 코리아의 주역이 돼야 한다”고 말하지만 정작 그들은 ‘통일 비관 세대’로 굳어질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이에 대해 통일연구원 조정아 연구위원은 “취업과 결혼, 육아의 어려움,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 등 20, 30대의 고민과 통일 준비를 함께 풀어나가는 접근법이 시급히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 남한 20대에 북한은 ‘외국보다 먼 민족’
대학생 박지수 씨(25·여)는 “통일이 되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남북의 사회적 경제적 시스템이 근본적으로 달라서 통일이 되기는 너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취업시험 준비 중인 윤모 씨(27)도 “북한이 핵무기까지 개발한 현실에서 통일이 쉽게 될 수 있겠느냐”며 “북한이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 같은 도발만 하지 말고 조용히 있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우리를 성가시게 하지만 않으면 된다’는 것이었다.
본보 조사의 통일 시기 질문에서 ‘절대 통일되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이 20대(33.4%)가 전체 평균(28.3%)보다 5.1%포인트나 높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통일교육원 이미경 교수는 “청년층의 북한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는 탈북자에게도 고스란히 투영된다. 북한이 도발을 일으킬 때마다 탈북자들이 사회적 냉대로 곤욕을 치르는 것도 같은 이유”라고 말했다. ‘형제나 자녀가 탈북자와 결혼해도 괜찮은가’라는 물음에 대한 20대의 부정적 답변은 42.5%로, 연령대별 구분에서 가장 높았다. 특히 20대 여성(50.8%)의 거부감이 가장 컸다. 반면 ‘다문화가정 자녀와의 결혼’에 대한 질문에서는 20대의 부정적 답변이 30.9%에 그쳐 다른 연령대보다 낮았다. 글로벌 세대인 20대가 다문화는 포용하면서도 탈북자는 못 끌어안고 있는 것이다. 이 교수는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감안해 북한 체제와 주민을 구분해서 바라볼 수 있도록 인식 변화 교육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대학생 박건준 씨(20)는 “같은 말과 글을 쓰지만 북한은 갈 수 없는 나라다. 공감하고 공유할 경험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외국보다 더 멀게 느껴질 때가 있다”고 말했다.
○ 통일을 저축할 여유 없는 한국의 30대
이번 통일 의식 조사에서 30대가 보인 특징은 ‘통일 준비 비용 부담’에 가장 부정적이라는 점이다. 연령대별 구분에서 유일하게 부정 답변(50.6%)이 긍정 답변(48.0%)보다 많았다. 특히 30대 여성의 ‘부담할 의사 없다’는 답변(55.0%)은 성별 및 연령별 구분에서 가장 높았다.
이른바 ‘워킹맘’인 이지은 씨(38)는 “애들이 한창 클 나이여서 돈 쓸 일이 정말 많다. 먹고살기 빠듯한데 통일 비용으로 뭔가가 지출된다는 것 자체가 달갑지 않다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두 아이의 엄마인 정수연 씨(37)도 “30대 여성 중 상당수는 아직 애들이 어리고 직장에서도 자리 잡아 가는 중이라 큰 변화가 두려운 시기”라며 “직면한 현실적 문제가 너무 많아서 통일 문제를 생각할 여유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전영선 건국대 교수는 “대학생 등 젊은 세대가 북한을 통합의 대상이 아니라고 보고 분단을 기정사실화하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우리나라 지도를 그리라고 하면 한반도가 아니라 남한 지도만 그리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라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 연구원 관계자는 이에 대해 “개인주의적이고 자유분방한 젊은 세대들이 북한을 이해하기도 싫고 통일에 대한 부담을 지기도 싫다는 것”이라며 “실질적인 통일 교육과 통일 비전 제시가 이뤄지지 않으면 통일 무관심 세대로 방치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통일 준비를 위한 재원 마련은 국민적 공감대 없이는 힘을 얻기 어렵다. 경제활동의 근간이 될 30대의 부정적 태도는 통일 대비의 적신호로 받아들여진다”면서 “대응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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