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널A의 인기 프로그램 ‘이제 만나러 갑니다’에 출연해 미모와 말솜씨로 인기가 높은 20대 탈북여성 A 씨가 남자친구와 헤어져야 했던 이유다. A 씨는 “헤어지기 위한 억지 핑계인 것 같지만 탈북자로서 커다란 장벽을 느꼈다”고 토로했다.
사선(死線)을 넘어 자유의 땅으로 온 탈북자들은 같은 피부색에 같은 말과 글을 쓰는 동포지만 이처럼 이방인 취급을 받곤 한다. 60년 넘은 남북 분단의 이질감과 한국 사회의 두터운 선입견 때문이다. 김흥광 NK지식인연대 대표는 “탈북자 간첩사건, 잇단 재입북 등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면서 한국 사회의 탈북자에 대한 불신이 더 커져 간다”고 걱정했다.
동아일보의 창간 93주년 기념 통일의식 조사에서 ‘형제나 자녀가 탈북자와 결혼해도 괜찮다’는 응답은 57.4%로 10년 전(53.2%)과 큰 차이가 없었다. 더 큰 문제는 ‘전혀 괜찮지 않다’고 대답한 강한 부정이 같은 기간 4.3%포인트(12.9%→17.2%) 증가했다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차별이나 무시는 결혼 못지않게 직업 세계에서도 심각하다. 북한에서 교사로 일했던 탈북자가 100명을 넘지만 아직 한국에서 제도권 교사로 일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 본보 여론조사에서는 ‘자녀의 교사가 탈북자여도 괜찮다’는 응답이 61.1%나 됐지만 현실은 전혀 딴판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탈북자를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으로는 품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한국 사회의 품에 제대로 안기지 못하는 탈북자들의 좌절감도 깊어지고 있다. 한국교육개발원 탈북청소년교육지원센터 김신희 연구원이 최근 탈북 청소년 287명을 대상으로 ‘한국을 떠나 다른 나라에서 살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37.0%가 ‘그렇다’고 답했다. 김 연구원은 “이들 37%가 한국을 떠나고 싶어 하는 이유는 탈북자를 복지의 일방적 수혜자 정도로 여겨 사회적 낙인을 찍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홍순경 북한민주화위원회 위원장은 “탈북자에 대한 경제지원만 지나치게 강조되면서 사회 전반의 탈북자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이 반감은 탈북자의 정착을 더 어렵게 만들고 그 해결을 위해 다시 경제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는 요구가 나오는 악순환 구조”라고 말했다.
‘탈북자=북한 정권’으로 보는 한국 사회의 편견도 탈북자가 행복해지는 ‘남한 내 작은 통일’을 어렵게 한다. 탈북 청소년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은 “탈북자와 북한 정권을 하나로 보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말했다. 탈북 대학생 백요셉 씨는 “가난 폭력 저학력 실업 등 탈북자의 사회 부적응 모습만 집중 보도되다 보니 탈북자에 대한 인식이 나빠진 것 같다”고 말했다.
탈북자들은 “우리가 자활의지를 갖고 남한 사회에 정착할 수 있도록 세밀한 대책이 뒷받침되면 좋겠다”고 말했다. 탈북자 출신 새누리당 조명철 의원은 “극소수의 탈북자 성공모델을 다른 탈북자들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며 “성공모델 개발과 부적응자들에 대한 교육 및 지원이 병행 추진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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