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네트워크 병원인 예치과는 ‘한국의 병원 수출 1세대’로 꼽힌다. 2005년 중국 상하이에 ‘예 메디컬센터’를 설립했다. 그때만 해도 우수한 의료 기술과 중국 내 한류(韓流) 열풍에 힘입어 성공을 자신했다. 하지만 마케팅 및 시설 투자 부족으로 환자를 모으는 데 한계가 드러났다.
개인병원이 연대한 정도로는 자금력이 달렸다. 설상가상으로 비슷한 시기에 싱가포르의 최대 의료법인 ‘파크웨이’가 상하이에 진출했다. 파크웨이는 수백억 원을 들이는 적극적인 마케팅, 현지 병원과의 인수합병(M&A)으로 치고 나갔다. 예치과는 별다른 소득 없이 2010년 상하이에서 철수했다.
국내 병원이 우수한 의료진을 앞세워 해외 진출을 모색하지만 넘어야 할 과제는 여전히 많다. 대형 병원은 국내법 때문에 해외 투자에 어려움을 겪는다.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제도 역시 부족하다. 이런 점 때문에 전문가들은 “의료를 한국의 신(新)성장동력으로 키우려면 정부의 과감한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현재 한국 병원 42곳이 해외 16개국에 91개 의료시설을 설립했다. 이 중에서 정상적으로 운영되는 곳은 절반 수준에 그친다고 의료계는 평가한다. 한국인 의사가 연간 한두 번 방문하거나, 해외 환자를 유치하려고 상담소를 운영하는 정도라는 얘기다.
가장 큰 원인은 비영리법인인 한국의 대형 의료기관이 해외법인에 투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국내 의료법인은 현지에 투자하기 위한 특수목적법인(SPC)을 세울 수 없다. 의료 행위 외에 장례식장, 부설 주차장, 병원 내 음식점 등 일부 부대사업만 가능하다. 해외 진출이 개인병원 위주인 이유다.
의료계는 ‘병원 수출’을 위해 의료법을 고치거나 특별법을 만들어 주기를 요구한다. 홍민철 한국의료수출협회 사무총장은 “자금력이 없는 개인 의원을 빼면 합법적으로 해외 병원에 투자하는 게 사실상 어렵다. 비영리 의료기관이 영리법인에 투자하도록 해야 우수한 자원을 가진 대형 병원이 해외 진출에 적극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병원 수출을 적극 돕는다는 게 기본 방침이다. 법 개정 여부는 공청회를 통한 의견 수렴을 거친 뒤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한국 병원의 경쟁력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해외에서 다른 나라의 대형 병원과 경쟁해 수익을 내려면 의료기술뿐 아니라 마케팅 기술이 뛰어나야 하고 부동산 등 부대사업에 함께 투자해야 한다. 한국의 대형 병원은 이런 부분에 대한 인력이나 노하우가 부족하다. 상하이 예치과 사업에 참여했던 의료인은 “해외에 나가 진찰, 수술만 잘하면 환자가 온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자금 조달이나 현지 마케팅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현지 국가와의 의료진 교류 확대, 한국 의료시스템 전수 등 체계적인 지원 역시 필요하다. 일본 같은 선진국은 정부가 나서서 후진국 의료진을 데려다 교육한 뒤 돌려보낸다. 이들이 나중에는 일본 의료 진출의 교두보 역할을 하는 셈이다. 정기택 경희대 의료경영학과 교수는 “병원 경영컨설팅, 병원시스템 수출을 포함하는 ‘종합 패키지’를 정부가 지원해야 병원 수출이 성공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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