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세력에 질린 울분인가, 계획된 시나리오인가. 국내 ‘샐러리맨 신화’를 대표하는 인물로 꼽히는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56)이 보유 주식 전량을 다국적 제약회사에 매각하겠다는 극약 처방을 내린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서 회장은 “지쳤다. 모든 것을 내려놓겠다”고 밝히면서도 투기 세력과 이를 묵인한 금융 당국을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증권가와 바이오 업계는 향후 어떤 파장이 미칠지 관심을 보이면서 매각 결정의 이면에 다른 이유가 있는 건 아닌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 “2년간 온갖 악성 루머 시달려”
셀트리온 측은 투기적 공매도 세력이 온갖 허위 사실과 루머를 유포한 것이 서 회장의 결정에 직접적인 원인이 됐다고 밝혔다. 공신력 있는 다국적 제약회사에 경영권을 넘겨주면 공매도 세력의 루머에 휘둘리지 않고 회사를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회사 측이 공개한 악성 루머는 다양했다. 신약 개발과 관련해 임상시험에 착수조차 하지 않았는데도 ‘환자 사망설’이 유포됐다. 임상시험이 성공하면 ‘허가를 받지 못할 것’이라는 소문도 퍼졌다. 서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투기적 공매도는 악(惡)”이라며 “나로 인해, 나의 결정으로 인해 공매도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게 하고 싶다”고 호소했다.
서 회장 개인에 대한 음해도 컸다고 했다. 미국 도주설, 건강 악화설이 연이어 나왔다. 최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 측의 돈이 투자자금으로 쓰였다는 소문까지 돌았다고 서 회장은 털어놓았다.
셀트리온에 따르면 최근 2년간 하루 거래량 대비 공매도 체결 비율이 3% 이상인 날은 189일(43.8%), 5% 이상인 날은 145일(33.6%), 10% 이상은 62일(14.3%)이었다.
이와 함께 주가도 하락세를 보였다. 셀트리온은 주가 안정을 위해 최근 두 차례에 걸쳐 총 150만 주(750억 원어치)의 자사주를 취득하겠다고 공시했지만 주가 하락을 막을 수는 없었다.
파장도 적지 않았다. 셀트리온은 지난달 고용노동부가 ‘창조경제 일자리 창출’의 대표로 손꼽았던 기업이다. 하지만 서 회장은 “조국은 해준 것도 없이 바라는 것만 많았다”고 일침을 놓았다. 그는 “돌이켜보면 창조적인 일은 모두 해외에서 진행했다”며 “국내에서 한 일은 의혹을 해명하는 게 대부분이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최후의 카드로 경영권을 내려놓으며 한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제약회사를 만들겠다는 꿈을 접고 금융당국에 공매도 세력에 대한 조사를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서 회장은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동시에 찾아왔다”며 그동안의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1년 전인 지난해 3월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고난을 극복한 한국의 바이오테크 성공 기업인’으로 거론한 서 회장은 예상치 못한 충격을 안기며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게 됐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대우자동차에서 명예퇴직을 당했지만 당시에는 이름도 생소한 바이오의약품 시장에 뛰어들어 셀트리온을 코스닥 시장 시가총액 1위 기업으로 키웠다.
○ “고심했다” vs “진정성에 갸우뚱”
서 회장은 어느 누구에게도 미리 알리지 않고 이날 회견을 자청했다. 아내에게도, 가족에게도 말하지 않았다고 했다. 셀트리온 직원들에게는 이날 아침에야 알렸고 2대 주주와 사전에 협의한 적도 없다고 말했다. 그는 “15일 오후 10시 기자회견 준비를 지시했지만 오래전부터 생각해온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증권가에서는 서 회장의 발표를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도 나온다. 공매도가 셀트리온만의 문제가 아닌 데다 6월로 예정된 관절염 치료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인 ‘램시마’에 대한 임상 결과 발표를 불과 며칠 전에도 홍보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는 “셀트리온은 회사를 키우는 과정에서 실제보다 부풀려진 측면이 있다는 얘기도 있었다”며 “증시에서 돌던 루머가 현실화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서 회장이 다국적 제약회사에 지분을 매각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예상도 나온다. 정부에 따르면 셀트리온이 보유한 ‘항체 대규모 발효 정제기술’은 2010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관련법에 따라 해외 인수합병(M&A)을 할 때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미리 신고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서 회장은 “실무진과 법 규정을 검토해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국내 제약 분야의 신성장동력으로 주목받는 바이오시밀러 산업 육성 전략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장관석·김현수·김철중 기자 jks@donga.com ▼ 주식 빌려와 판뒤 나중에 해당 주식 사서 되갚는 매매 ▼
■ 주식 공매도란
공매도는 다른 투자자에게서 주식을 빌려와 판 뒤 나중에 해당 주식을 사서 되갚는 매매 방식이다. 해외에서는 주식이 없어도 팔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반드시 주식을 빌려 와야 한다. 빌릴 때보다 나중에 살 때 주가가 떨어져 있어야 차익을 본다.
예를 들어 A 종목 주가가 1만 원일 때 주식을 빌려 와 팔았는데(공매도 매도 주문) 실제 결제일에 8000원으로 떨어지면
투자자는 그때 사서 갚고 2000원을 버는 식이다. 대부분은 파생상품을 거래하면서 혹시 손해가 생겼을 때 이를 보전하려고
이용한다.
공매도에 나선 투자자들은 주가를 떨어뜨리기 위해 해당 기업에 대한 악성 루머를 퍼뜨리기도 한다. 서정진
셀트리온 회장도 이 점을 호소했다. 하지만 한국거래소와 금융감독원 관계자는 “셀트리온의 문제 제기로 해당 종목의 공매도를
들여다봤지만 공정한 가격 형성을 저해했다고 볼 만한 점은 없었다”고 말했다.
금융 당국은 공매도 부작용을 막으려고
직전 거래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공매도 주문을 내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개별 종목의 공매도가 주식 거래량의 3∼5%를 20일 이상
초과하면 공매도를 금지할 수 있다. 지난해부터는 공매도 물량이 발행주식의 0.01%를 초과하면 의무적으로 보고하는 제도도
도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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