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전 초짜 기자 시절 선배들에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 중 하나가 ‘심판 문제’였다. 술자리 단골 메뉴였다. 그 내용이 충격적이어서 쓴 술을 거푸 들이켰던 기억이 난다. 중요한 경기를 앞두고 어느 구단이 심판을 구워삶았다거나 특정 구단과 특정 심판의 부적절한 관계가 의심된다고 했다. 프로 무대가 이 정도였으니 아마추어는 말할 것도 없었다. 화가 치밀었다. 심판 비리가 K리그 발전을 가로막는 걸림돌이라는 인식이 싹튼 시기였다. 상당수 축구인들이 비슷한 소문을 들었다고 생각한다. 그 축구인들은 심판을 ‘그라운드의 판관’이라고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부풀려진 측면도 있었겠지만 어느 정도 부정이 존재했다고 나는 믿는다.
강산이 두 번이나 변할 정도로 세월은 많이 흘렀다. K리그는 양적, 질적으로 성장했다. 심판도 변화를 거듭했다. 적어도 20년 전과 같은 망측한 소문은 들리지 않는다. 감시의 눈길이 촘촘해졌고, 프로구단들의 의식도 바뀌었다. 심판의 자질이 향상된 것도 부인할 수 없다. 심판은 K리그의 한 축을 이룬다. 선수단과 구단 프런트, 프로축구연맹, 축구팬과 함께 심판도 K리그를 구성하는 중요한 요소다.
그렇다면 2013년 현재의 심판 세계는 어떤 모습일까. 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전임 심판제가 실시된 가운데 올 해 전임 심판은 모두 46명(주심 22명, 부심 24명)이다. 이들이 K리그 클래식(1부 리그)과 챌린지(2부 리그)에 투입된다.
심판(주심, 부심, 대기심) 처우는 상당히 개선됐다. A∼D등급과 신입으로 구분되며 배정받는 경기의 수당을 지급받는다. 주심은 경기당 180만∼103만원, 부심은 96만∼57만원이다. 지난 시즌 주심은 평균 3700만원, 부심은 3200만원의 수입을 올렸다. 최고는 6000만 원을 훌쩍 넘었다. 2000년대 중반까지 주심 25만원, 부심 15만원의 수당을 받던 시절과 비교하면 상전벽해다. 연맹 관계자에 따르면 아시아권에서는 일본 다음으로 높은 수준이다.
심판은 연공서열이 아니라 철저한 능력제다. K리그가 승강제를 하듯 심판도 마찬가지다. 평점에 따라 2부 리그로 내려간다. 3개월 단위로 등급을 조정하는데, 등급이 달라질 경우 배정받는 경기 수와 수당이 달라지기 때문에 한눈 팔 수가 없다. 지난 시즌부터 정년제도 도입됐다. 만 50세다. 더욱 빨라지고 있는 현대 축구의 흐름을 쫓아가기 위한 조처다.
장비도 첨단이다. 판정의 정확성과 원활한 경기 진행을 위해 도입됐다. 소형 헤드셋 무전기와 부심의 오프사이드 판정을 인지할 수 있는 알림 장치가 눈에 띈다. 프리킥 거리의 경계선을 긋기 위한 베니싱 스프레이도 선보였다. 이는 프리킥 때 주심이 프리킥 지점과 수비벽까지의 거리를 표시하는 장비인데, 불필요한 시간을 줄여준다.
처우 개선이나 장비 지급 외에 규정도 심판의 권위를 세워준다. 프로연맹은 2011년 10월 이사회를 통해 ‘K리그 관계자는 공식 인터뷰, 대중에게 공개되는 어떤 경로로도 판정, 심판과 관련한 일체 부정적인 언급을 할 수 없다’고 규정했다. 심판 권위가 서지 않으면 K리그 발전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구단은 대의를 위해 양보했고, 감독은 불만이 있어도 꾹 참는다. 사후 동영상 분석도 마찬가지다. 경기 후 분석을 통해 출전 정지 및 감면을 해주는 제도인데, 상벌위원회가 아닌 심판위원회 결정으로 징계를 줄 수 있도록 했다.
위에 언급된 내용들을 보면 K리그가 심판들에게 얼마나 많은 투자와 지원을 하고 있는 지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이제 심판들이 화답할 차례다. 특히 승강제 원년인 올 시즌 심판의 역할은 막중하다. 휘슬 한번 잘못 불어 강등되는 최악의 경우도 나올 수 있다. 이런 손해를 어떻게 보상할 것인가. 심판들은 정신 바짝 차리고 휘슬을 불어야한다. 편파, 악의, 무능, 봐주기 판정은 용납되지 않는다. 부여된 권한만큼이나 엄정한 판정을 할 때 비로소 ‘그라운드의 판관’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