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발견됐다”고 허위 발언한 혐의로 1심에서 법정 구속됐다가 8일 만에 보석으로 풀려난 조현오 전 경찰청장이 23일 법정에서 발언의 출처로 임경묵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을 지목했다. 조 전 청장은 1심 재판부와 언론의 계속되는 출처 공개 요구에도 침묵했지만 실형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입을 열었다.
이날 오전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부장판사 전주혜)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에서 조 전 청장은 “2010년 3월 강연을 열흘 정도 앞두고 서울의 모 호텔 일식당에서 임 전 이사장과 단둘이 만나 2시간 정도 얘기를 나눴는데 그때 (임 전 이사장이 차명계좌 관련 내용을) 지나치듯이 얘기해줬다. 강연 도중 그 이야기가 떠올라 당시 들은 대로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임 전 이사장이 국가정보기관 사무관 특채로 채용돼 검찰을 출입하면서 당시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 대검찰청 수사기획관 등과 가까운 사이였다”며 “검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었고, 경찰 내부 일에 대해 나보다 더 훤히 꿰고 있어 임 전 이사장이 한 얘기를 믿을 수밖에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발언의 출처를 공개하지 않았던 조 전 청장은 항소심에서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자신에게 차명계좌 얘기를 해준 유력인사 3명을 설득해 증인으로 세우려고 보석을 신청했고 재판부도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허가했다. 그러나 설득에 실패해 궁지에 몰리자 최후의 수단으로 유력인사 중 한 명의 이름을 공개한 것으로 보인다. 조 전 청장은 ‘유력인사’에 대해 그동안 “대통령과 수차례 독대할 정도로 나보다 정보력이 훨씬 뛰어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고 말해왔다.
항소심 재판부는 조 전 청장이 발언의 출처를 밝힘에 따라 “피고인이 강연 전에 들은 내용을 확인해야 발언 내용의 진위를 판단할 수 있다”며 임 전 이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하고 다음 달 14일 소환해 신문하기로 했다. 소환에 불응하면 강제 구인할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조 전 청장은 검찰 조사와 1심 공판 내내 “강연 전에 유력인사 3명으로부터 차명계좌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가 돌연 1심 결심공판에서 “강연 전에 차명계좌 얘기를 한 건 유력인사 한 명이었고, 강연 이후에 나머지 두 명으로부터 차명계좌와 관련된 얘기를 추가로 들었다”고 진술을 바꿨다.
조 전 청장은 이날 항소심 공판에서 나머지 유력인사 두 명에 대해서도 추가로 설명했다. 그는 “강연 이후인 2010년 8월 대검 중수부 최고 책임자와의 통화에서 ‘이상한 돈 흐름이 발견됐었다’는 말을 들었고 같은 해 12월 경찰 정보관에게서 ‘대검 중수부 금융자금수사팀장을 지낸 법무사 이모 씨로부터 검찰이 청와대 여직원 계좌 추적에 나섰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추가로 전해 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조 전 청장은 유력인사 두 명에 대해 ‘대검 중수부 핵심 수사라인에 있던 검사와 수사관’이라고만 밝혀왔다.
발언의 출처로 지목된 인물들은 모두 “사실무근”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임 전 이사장은 “조 전 청장에게 (차명계좌 관련) 얘기한 적이 없다”며 “조 전 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지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이었던 이인규 변호사는 “조 전 청장과 전혀 친분이 없고 통화를 한 적도 없다. 황당하다”고 말했다. 조 전 청장이 임 전 이사장과 친분이 두터웠다고 지목한 당시 대검 수사기획관이었던 홍만표 변호사는 “임 전 이사장은 전혀 모르는 사이”라며 “조 전 청장에게 차명계좌가 확실히 없다고 얘기했다. 법정에서 한 말은 책임져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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