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잘못하고 있다. 개성공단을 볼모로 삼으면 안 된다. 그건 북한이 자해하는 일이고 남북을 같이 해치는 일이다. 북한이 영원히 폐쇄된 고립국가로 갈 작정이 아니라면 개성공단을 열어야 한다.”
개성공단 산파역 중 한 사람으로 평가받는 정동영 전 통일부 장관(사진)은 이렇게 강조했다. 그와의 인터뷰는 개성공단 출입이 제한된 지 20일째인 22일 그가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사단법인 ‘대륙으로 가는 길’의 서울 여의도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노무현 정부 시절 장관으로서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장을 겸임했던 그는 인터뷰 내내 책상을 주먹으로 쿵쿵 내리치며 한국 정부에도 적극적인 해결책을 주문했다
“개성공단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시금석이다. 북한이 잘못했지만 남측이 형의 위치에서 문제를 풀어야 한다. 11일 대화를 제의한 박근혜 대통령이 잘 판단했다. 문제는 후속조치가 없다는 점이다. 참모들 모두가 박 대통령의 입만 보고 있다. 양질의 보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왜 개성공단이 중요한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한국이 대북정책의 그림을 그리면 미국은 함께할 준비가 돼 있다’는 태도다.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 성공의 좋은 기회다. 그 첫 단초가 개성공단이다. 지금과 같은 최악의 정치·군사적 위기에서 개성공단을 살려내면 박근혜정부의 유연한 대북정책이 결실을 맺고 반석에 올라간다. 한국의 레버리지(지렛대)와 주도권이 생긴다. 북핵 문제는 남-북-미에 걸쳐 있지만 개성공단은 남북문제다.”
―개성공단이 문을 닫으면….
“북한은 더이상 경제특구 외자유치 얘기를 할 수 없다. 멀쩡히 잘 돌아가는 공단을 닫고 무슨 경제특구며 외자유치냐. 북한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대해 아직 잘 모른다. 박근혜정부는 이명박 정부 5년의 남북 경색을 되풀이하면서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가 좌초할 수도 있다. 개성공단이 덜커덕 닫히는 날 한국 신용등급도 떨어질 것이다.”
―중요한 기로란 뜻인가.
“박근혜정부가 정말 개성공단의 전략적 가치를 인정한다면 공단을 살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모든 노력을 해야 한다. 문제를 풀기 위한 회담의 날짜와 장소, 대표의 급을 구체적으로 정해 북한에 제안해야 했다. 북한이 이를 거부하면 자신들이 손해라고 생각하도록 그림을 그려 나가야 한다.”
―대북 특사 얘기도 나온다.
“급한 건 형식보다 내용이다. 북한은 1인 집중 체제다. 최고지도자인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귀에 개성공단에 대한 박 대통령의 의지가 직접 전달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특사든, 국정원의 팩스든, 중국 베이징에서의 면대면(面對面) 접촉이든, 편지든, 뭐든지 해야 한다. 김정은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들어봐야 한다. 지금은 (최근 김정은을 만난) 미국 농구선수 출신 데니스 로드먼한테나 물어봐야 하는 상황 아닌가.”
―박 대통령의 대북 대응을 평가하면….
“세 가지 장점과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을 말하겠다. 우선 출범 초기 대북 대응을 신중히 잘했다. 둘째, 박 대통령은 북한 최고지도자(김정일)와 직접 소통한 경험이 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박정희 전 대통령)의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의 정신과 가치를 물려받으면 대북정책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그러나 이 장점들을 살릴 보좌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고 있다.”
―박 대통령에게 조언한다면….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은 우파 반공주의자였다. 그런 그가 중국의 개혁개방을 이끌어냈기에 미국 국내 여론이 분열되지 않았다. 박 대통령이 대북정책에서 적극적인 이니셔티브(주도권)를 행사하며 대화에 나서도 우리 내부가 분열되지 않을 것이다. 닉슨 옆엔 헨리 키신저가 있었다. 박 대통령에게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이행전략을 짤 ‘한국판 키신저’가 필요하다. 20년을 끌어온 북핵의 한반도 냉전구조를 바꿀 좋은 타이밍이다. 이 구조를 해체하면 박 대통령의 역사적 업적이 될 것이다.”
정 전 장관은 “이명박 정부는 북한 붕괴론의 유혹에 빠져 북한이 붕괴하기를 기다렸다. 북한이 그걸 몰랐겠나”라고 말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박 대통령의 역할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북한 지도부는 체제 생존이 제1가치다. 박 대통령이 ‘우리는 당신들을 붕괴시키려 하지 않는다. 체제 보장과 경제 발전을 도와줄 수 있다’는 메시지를 공개적으로 전하면 북한도 협력할 여지가 생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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