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며칠만 쉬고 싶다”는 말을 습관처럼 내뱉는 당신. 대한민국 ‘평균 근로자’의 모습이다. 연간 근로시간이 2116시간에 달하는 현실이 만든 슬픈 자화상이다. 연간 근로시간이 1600시간도 안되는 프랑스 독일 같은 나라에서 보면 한국 근로자는 ‘일하는 기계’인 셈이다. 탈이 날 수밖에 없다. 지난달 한 주류업체가 30, 40대 남녀 직장인 65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응답자의 42%가 스트레스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야근이나 휴일근무’를 꼽았다. 상사의 잔소리(32%), 부하 직원의 무시(12%)보다 높았다. 한국의 직장인들은 선후배 갈등, 실적 압박보다 장시간 근로에서 스트레스를 더 많이 느끼는 것이다.
○ 야근은 필수, 휴일근로도 필수?
한국 근로자들이 일하는 시간은 얼마나 될까? 한국노동연구원이 2010년 장시간 노동 실태를 조사했다. 일주일간 48시간 이상 일하는 사업체는 전체의 37.6%였고 52시간이 넘는 곳도 18.5%에 달했다.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2011년)에서 주당 52시간을 초과해 일하는 근로자는 380만 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전체 근로자 1740만 명의 21.8%에 달한다. 다섯 명 가운데 한 명이 법정 근로시간(일주일 40시간, 연장근로 포함 52시간)보다 더 일하고 있는 것이다.
장시간 근로에서 야근 못지않게 심각한 것이 바로 휴일근로다. 고용노동부 조사에 따르면 약 20%의 근로자가 휴일에 일을 한다. 또 법정 근로시간 한도인 일주일 52시간을 넘기고도 휴일까지 일하는 근로자도 7.8%에 이른다.
일부 사업장의 근무형태가 장시간 근로를 유발하는 큰 원인이다. 휴일 없는 주야 맞교대 근무제의 경우 근로시간이 크게 늘어나는 경우가 많다. 국내 사업장 열 곳 가운데 네 곳(35.1%) 가까이 이런 교대제 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초과근무수당 등 임금 때문에 노사 합의로 휴일근로를 실시하는 곳도 적지 않다. 그러나 실제 직장인들이 체감하는 만족도는 높지 않다.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지난해 직장인 2003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71%가 ‘휴일 근로 없는 삶의 여유’를 선호했다. 임금 상승을 선호한 응답자는 29%에 불과했다. 고용부 관계자는 “지금처럼 소수가 장시간 근로하는 노동시장 구조는 사회적 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도, 지속가능하지도 않다”며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한도 포함 등 근로시간 총량 규제 강화가 시급하다”고 말했다.
○ “사장님, 매출 걱정은 이제 그만!”
근로시간 단축에 꼬리말처럼 붙는 것이 ‘생산성 저하’다. 대부분의 사용자들은 생산성 저하로 매출 감소 등을 우려한다. 하지만 반대의 결과를 얻는 경우가 많다. 충북 충주시의 ‘코이스충주’는 액정표시장치(LCD) 디스플레이 필름을 제조하는 업체다. 60여 명의 근로자들이 주야2교대제로 일하다 2011년부터 3조2교대제로 바뀌었다. 주당 근로시간은 52시간에서 40.6시간으로 줄었다. 그러나 회사 매출액은 270억 원으로 2010년(180억 원)에 비해 50% 늘었다. 또 10명의 직원을 새로 뽑았다. 자동차 안전벨트를 생산하는 ㈜진성산업(강원 원주시)은 지난해 주야 맞교대제를 주간 연속2교대제로 변경했다. 근로시간은 주당 평균 13.5시간이나 단축됐지만 생산성은 높아지고 이직률은 낮아지는 효과를 얻었다.
사무직 분야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많다. 정보기술(IT)업체인 ㈜지오투정보기술은 집중근로시간제를 비롯한 유연근무제(대체휴무제, 재량근로시간제) 활용으로 연장근로를 최소화했다. 이를 통해 근로시간이 월평균 191.1시간에서 182.1시간으로 9시간 단축됐다. 업체 측은 “직원들이 남는 시간을 자기계발의 기회로 활용해 생산성이 향상되고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고 전했다.
2012년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연구결과에 따르면 근로시간 단축은 근로자의 건강권 보호, 일과 가정의 양립, 충분한 휴식과 교육훈련에 대한 재투자를 이끌어내 노동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것으로 분석됐다. 또 주당 12시간인 법정 연장근로 한도만 지켜도 새로운 일자리가 75만 개 창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박지순 고려대 법대 교수는 “장시간 근로 문제를 개선하려면 제도 정비와 함께 사업장 내 관행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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