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설비업체 이사였던 정규훈(가명·53) 씨는 1998년 초에 선 연대보증 때문에 10년 이상 가족과 헤어져 살았다. 주채무자가 빚을 갚지 않자 추심업자의 빚 독촉이 시작됐다. 아내는 집을 나가 장사했고, 아들딸은 부모님 댁에 맡겼다. 2009년 작은 월세 아파트에 가족이 모였지만 아직도 보증 빚에 허덕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인 ‘국민행복기금’이 원리금 탕감을 위한 가접수를 받기 시작했지만 정 씨 같은 보증채무자들은 전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마음 한쪽에선 상대적 박탈감만 커진다.
24일 은행연합회 등에 따르면 정 씨처럼 2금융권 대출이나 보증보험에 연대보증을 선 사람이 197만 명에 이른다. 연대보증인들이 2금융권에서 약정한 보증규모는 총 75조 원으로 전체 2금융권 대출 및 보증액(551조 원)의 14%에 이른다.
동아일보는 연대보증 채무자들의 어려움을 알아보기 위해 연대보증을 선 경험이 있는 31명을 심층 인터뷰했다. 정 씨도 그중 한 명이다.
16년 동안 연대보증의 굴레를 벗어나지 못한 한상욱 씨는 “자기 잘못으로 빚진 사람은 기금으로 구제하고, 남의 잘못으로 빚을 진 연대보증 피해자는 방치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재기할 수 있는 길을 정부가 열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도 “전 세계적으로도 연대보증 같은 제도를 갖고 있는 나라가 드물다”면서 “신규 연대보증을 폐지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거에 계약한 연대보증 때문에 과도하게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방안을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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