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침략 사실마저 부정하는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부의 유례없는 우경화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의 신뢰외교가 엄중한 시험대에 올랐다. 2015년까지 구체화할 계획이던 박근혜정부의 동북아평화협력 구상은 출항하자마자 ‘일본의 역사 도발’이란 큰 암초를 만났다. 정부는 이 암초를 우회하지 않고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아베 총리는 23일 일제의 침략을 부정하는 발언을 한 데 이어 24일에도 참의원 예산위원회 답변에서 야스쿠니(靖國)신사 참배에 대해 “일본 각료들에게는 어떠한 위협에도 굴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23일 밤 ‘영토·주권을 둘러싼 내외 발신에 관한 전문가 간담회’ 회의에서 “일본의 입장이나 생각을 국제사회에 정확하게 침투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며 “일본의 영토와 주권에 대한 도발이 계속되는 가운데 영토를 단호하게 지키는 결의가 기본”이라고 말했다. 독도와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문제에서 한국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이나 분쟁에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정부는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늦어져도 역사 문제에서 타협은 없다”는 강경 기조를 정했다. 정부는 금명간 주한 일본대사를 외교부 청사로 초치할 것으로 알려졌다. 주일대사의 본국 소환 등 추가적인 강경 대응책도 검토하고 있다.
정부의 대일 대응 기조는 3대 전략으로 압축된다. 복수의 정부 고위 당국자는 “우선 정부는 한일 관계 정상화의 출발이 늦어지더라도, 임기 초 보여주기 식 관계 개선을 위해 양보할 수 없는 역사 문제를 덮어두는 지난 정부의 오류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가 임기 초 과거보다 미래를 강조하며 한일 관계를 개선했다가 임기 말인 지난해 독도를 전격 방문해 한일 관계가 악화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 주일대사 소환 등 강경책 검토 ▼
둘째, 정부는 일본에 새로운 사죄보다 기존의 공식 사죄를 무력화하지 말 것과 함께 사죄에 따른 일본군 위안부 배상 등 구체적 행동을 요구할 계획이다. 한 당국자는 “1970년 폴란드를 방문해 사죄한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처럼 일본 총리나 일왕이 다시 사죄해도 좋지만 이를 공식 요구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한일 정상회담도 일본이 상황을 악화시키지 않고 협력할 때나 가능하다고 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24일 “책임 있는 지도자라면 올바른 역사인식을 갖고 행동으로 옮겨야 한다”며 실천을 강조했다.
셋째, 이런 상황에서도 한일 자유무역협정(FTA) 등 경제 협력과 북핵 공조는 이어가기로 했다. 역사인식을 비판하는 것이지 국교를 단절하자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국민 감정을 건드리는 한일 간 군사협력은 어렵다는 방침을 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아베(총리)에 대한 박근혜(대통령)의 실망감과 배신감이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에 따르면 박 대통령은 당초 5월 서울 한중일 정상회의 때 한일 정상 간 별도의 담판 회동을 통해 한일 국교 수립 50주년인 2015년까지 한일 과거사 문제를 풀 단초를 만들려 했다는 것이다. 일본군 위안부 배상 등 과거사 사죄 문제는 일본 정상의 정치적 결단 없이 당국자들 간 외교협상만으로는 근본적인 해결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그러나 중-일 영토분쟁으로 한중일 3국 정상회의의 5월 개최가 물 건너가고 아베 총리와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의 잇단 역사 도발로 박 대통령의 이 구상은 모멘텀(동력)을 찾기 어렵게 됐다. 정부의 대일 전략은 작금의 비상 상황 때문에 마련한 ‘플랜B’(차선책)인 셈이라고 외교소식통은 설명했다.
이 때문에 일본을 자제시킬 실질적 힘이 있는 미국을 적극 활용하는 외교가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베 총리의 고노 담화(일본군의 위안부 강제연행 인정) 수정 검토에 제동을 건 게 버락 오바마 행정부이기 때문이다.
윤덕민 국립외교원 교수는 “일제의 침략을 부정한 아베 총리의 발언은 바꿔 말하면 ‘미국이 일본을 침략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이는 미국이 받아들이기 어려운 비이성적인 주장 아니냐”면서 “대미외교를 펼쳐 미국이 일본을 움직이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비공식 경로로 일본에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는 신호를 함께 보내 힘을 잃은 일본 내 친한파가 목소리를 낼 여지를 만들어주는 노력도 병행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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