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추 트레인’ 추신수(31·신시내티)의 거침없는 기적 소리가 메이저리그(ML)를 뒤흔들고 있다. 신시내티의 리드오프를 넘어 내셔널리그(NL)는 물론 ML까지 집어삼킬 태세다. 반면 아메리칸리그의 일본인 타자 스즈키 이치로(40·뉴욕 양키스)는 흐르는 세월과 사투를 벌이고 있다. ‘메이드 인 저팬’과 ‘메이드 인 코리아’의 특수관계도 그렇지만, 인연과 악연의 굴레로 얽힌 둘이기에 이들의 희비쌍곡선에 시선이 쏠린다.
○메이저리그를 정복하는 추신수
추신수는 25일(한국시간) 홈구장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에서 열린 시카고 컵스전에 ‘변함없이’ 1번 중견수로 선발 출장해 ‘어김없이’ 멀티히트를 작성했다. 4타수 2안타로 시즌 타율을 0.392(79타수 31안타)로 끌어올려 ML 전체 2위에 랭크됐다. 올 시즌 출장한 21경기 중 12경기에서 멀티히트. 역설적이지만, 이제 한 경기 4타수 2안타의 성적은 평범해 보일 만큼 최근 활약은 무섭다. 실제로 ML 전체 1위인 출루율은 전날 0.535에서 0.534로 1리 떨어질 정도로 고공비행을 펼치고 있다. 추신수는 이날 34연속경기 출루행진으로 1981년 데이브 콜린스가 세운 신시내티 팀 역사상 최다 연속경기출루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전날까지 NL 최다안타 1위였지만, 이날 호세 알투베(휴스턴)를 제치고 ML 1위까지 접수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금까지의 성적은 센세이셔널 그 자체다. 미국 언론이 벌써 추신수의 시즌 최우수선수(MVP) 가능성까지 점치고 있는 게 결코 호들갑은 아니다.
○2할대 타율마저 힘겨운 이치로
같은 날 이치로는 탬파베이 원정경기를 치렀다. 하위타순을 맴돌다 전날 8번까지 밀려난 이치로는 4타수 2안타를 치면서 이날은 모처럼 2번으로 승격했다. 그러나 0-3으로 뒤진 9회초 1사 1루서 우전안타를 기록한 것이 이날 활약의 전부. 그는 시즌 초반 타율이 1할대에도 미치지 못할 정도로 극심한 타격부진에 시달리다 최근 힘겹게 2할대로 올라섰다. 이날 4타수 1안타를 쳤을 뿐인데 전날보다 2리 상승한 0.222(63타수 14안타)가 됐을 정도다. 올 시즌 볼넷은 단 4개, 출루율조차 0.265에 불과하다. 추신수와 달리 이제 이치로가 2안타를 치는 날이면 화두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인연과 악연, 도전과 응전
추신수에게 이치로는 회한의 이름이다. 높은 벽이었고, 아픔이었다. 부산고를 졸업한 뒤 2001년 시애틀에 입단한 추신수는 최고 유망주로 꼽혔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같은 해 이치로가 시애틀에 입단하면서 운명이 꼬였다. 오랜 시간 마이너리그에서 눈물 젖은 빵을 먹어야만 했다. 일본 최고 타자였던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진출 첫해에 242안타를 치며 ML 한 시즌 최다안타 기록을 80년 만에 갈아 치웠고, 타격왕·도루왕·신인왕에 MVP까지 석권했다. 하필이면 같은 포지션에 이치로가 버티고 있는 바람에 추신수는 어쩌다 빅리그로 승격돼도 익숙하지 않은 중견수로 밀려났다. 그러다 다시 마이너리그행을 반복했다. 특급 우익수 2명이 필요하지 않았던 시애틀은 결국 2006년 추신수를 클리블랜드로 트레이드했다.
○날렵한 스포츠카와 묵직한 세단
둘은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이치로는 키 180cm, 몸무게 77kg으로 잘 빠진 몸매다. 전성기 나쁜 공도 안타로 만드는 ‘배드볼 히터’였고, 평범한 내야땅볼도 내야안타로 연결하는 빠른 발을 자랑했다. 추신수는 180cm로 키는 같지만 몸무게는 93kg으로 탄탄한 체격의 소유자다. 이치로와 달리 나쁜 공은 치지 않는 인내심을 발휘한다. 아직은 통산기록을 비교하기 힘들지만, 통산 출루율(0.386)만큼은 이치로(0.364)보다 우위에 있는 이유다. 추신수는 파워를 갖춘 호타준족으로, 이치로가 한번도 달성하지 못한 20홈런-20도루를 2차례나 작성했다. 둘 다 투수 출신으로 강력한 레이저빔 송구를 자랑한다.
이치로가 날렵하고 세련된 스포츠카라면, 추신수는 우직하면서도 파워풀한 세단이다. 이치로가 일본에서 완성된 전자제품처럼 정밀한 야구로 미국 시장을 공략했다면, 추신수는 몸 하나 믿고 외국으로 건너가 자수성가한 한국의 산업역군들처럼 방망이 하나 달랑 메고 미국으로 건너가 고생 끝에 성공시대를 개척하고 있다.
세상에 영원은 없다. 흐르는 세월 앞에 장사도 없다. 10년 연속(2001∼2010년) 200안타-3할을 식은 죽 먹기로 해내던 이치로는 어느덧 머리가 희끗희끗한 불혹의 중년신사가 됐다. 고정된 타순조차 없이 떠돌며 2할대 초반의 타율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반면 추신수는 한계를 모르고 고공비행을 펼치고 있다. 그동안 메이저리그에서 동양의 간판타자는 누가 뭐래도 이치로였다. 그러나 이제 바야흐로 추신수 시대로 접어든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