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8월 회사 동료의 연대보증을 섰던 이모 씨(59)는 동료가 잠적했다는 소식을 듣고 몸에 힘이 빠졌다. 놀란 마음을 추스르기도 전에 캐피털사, 대부업체 등에서 “○○ 대신 빚을 갚아야 한다”는 전화가 빗발쳤다. 동료가 잠적한 지 채 한 달도 안 되어서 이 씨를 대상으로 한 채권 추심이 시작된 것이다.
이 씨는 “동료를 너무 믿은 내 잘못도 있지만 주 채무자를 제쳐 두고 연대보증인만 몰아세우는 금융회사의 행태에는 치가 떨린다”며 “하도 억울해서 나도 채무자를 찾아볼 테니 당신들도 열심히 찾아보라고 했다”고 말했다. 본보가 심층 취재한 31명의 연대보증인은 금융회사가 주 채무자에게 대출금을 회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7월부터 저축은행, 보험사, 카드사, 캐피털사, 일부 대형 대부업체 등 제2금융권의 신규 연대보증이 사라지지만 기존 연대보증으로 고통 받고 있는 채무자에게 돌아가는 혜택은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과거 한국의 연대보증 제도는 금융기관으로서는 비용이 거의 안 들면서 채권 회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유용한 수단”이라며 “연대보증을 지게 해서 발생하는 이익은 금융회사가 누리고, 부담은 보증인에게 전가한 측면이 크다”고 말했다.
금융 전문가들은 과거 연대보증으로 억울하게 고통 받는 ‘선의의 피해자’를 도우려면 금융기관이 연대보증인에게 빚을 갚도록 요구하기 전에 주 채무자에게서 빚을 받아내려는 노력을 더욱 기울이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잠적해 버렸거나 상환 능력을 잃었다는 이유로 주 채무자를 너무 쉽게 포기하고, 그 대신 손쉽게 채권 추심을 할 수 있는 연대보증인을 닦달하는 금융회사에 대해 금융당국의 제재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 명의 연대보증인에게 채무액 전액을 청구하는 관행도 없애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김동환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미국, 독일, 프랑스 등 선진국은 채무의 50% 이상을 한 명의 연대보증인에게 묻지 못하게 하는 관행이 있다”며 “연대보증인이 여럿 있으면 채무를 나눠서 갚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도 기존 연대보증인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 줄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금융위원회는 내주 ‘연대보증 폐지 종합대책’을 마련해 발표한다. 이 대책에 기존 연대보증인을 위한 구제 방안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우선 연대보증 채무자도 국민행복기금의 채무조정 지원을 받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지금은 주 채무자만 신청할 수 있다. 연대보증 채무에 대해 저금리의 전환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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