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X파일의 X파일]味盲 PD가 착한 전복죽 찾기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4월 27일 03시 00분


전복죽 하루 4, 5그릇… 두달하니 5kg 쏙 ‘이영돈 다이어트’죠

‘먹거리 X파일’의 이성환 PD는 중학교 때 미맹(味盲) 진단을 받았다.

“미맹인데 이 프로그램을 맡으니까 처음엔 참… 그렇더라고요.” 심봉사가 눈을 떴다던가. 24일 밤 만난 이 PD는 “계속 먹다보니 이 맛과 저 맛의 다른 점이 느껴지기 시작했다”고 ‘간증’했다.

지난달 15일 방영된 전복죽 편을 위한 취재는 그의 혀는 일으켜 세우되, 그의 살은 앗아갔다. “취재는 8주간 진행됐습니다. 많을 땐 하루에 전복죽만 4, 5그릇씩 먹었죠. 몇 주를 죽으로만 연명하다보니 감사하게도 살이 쭉쭉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두 달 만에 5kg이 빠져나갔다. 이 PD는 그러나 ‘전복죽 황제 다이어트’를 권장하고 싶지 않아보였다.

“우리 쪽에선 이영돈 다이어트라고도 하죠. 전복이 정말 지긋지긋했어요. 취재 끝나고 정산하느라 영수증을 세어보니 다녀온 죽집만 60군데가 나왔어요. 한 번 가면 두세 그릇 시키니까 제작진이 먹은 전복죽만 100그릇이 훨씬 넘겠군요. 죽 쪽으로 취재가 진전되지 않아 막판에 전복과 관련한 다른 아이템으로 진행해볼까 해서 후배 스태프에게 의견을 물었는데… 절 보는 그들의 눈빛이, 잡아먹으려는 눈빛이더군요. 그들은 다시는 바닷가 근처에도 가기 싫다고 했어요.”

착한 전복죽 찾기가 특히 어려웠다. 제작진은 전국을 누볐다. 서울 근교부터 제주까지, 서해와 동해, 완도를 포함한 남해를 빙 돌았다. 차도 타고 비행기도 타고 배도 탔다. 결국 경남 남해에서 귀인을 만났다. 식당 주인은 직접 물질을 하는 해녀였다. 전문가 검증단을 데리고 가 4그릇을 시켰다. 정황상 나무랄 데 없었지만 너무 저렴한 가격이 못내 의심스러웠다. 주인은 전날 미리 썰어놓은 전복을 쓴다고 했다. 제작진은 네 그릇에 들어갈 총 네 마리 중 한 마리는 즉석에서 썰어달라고 주문했다. 해녀의 억센 손이 갓 따와 싱싱한 전복을 서걱서걱 썰기 시작했다. 한술 떠 맛을 본 전문가 한 명은 촬영 중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집에 가져간다며 다급하게 전복을 따로 샀다. 전복죽 편은 착한식당 해녀 주인의 물질 모습을 영상에 담기 위해 수중카메라까지 동원된 ‘블록버스터’였다.

서울의 제작팀 사무실에서는 미세한 액션이 펼쳐졌다. 전복의 DNA 검사를 기관에 의뢰하기 위한 시료 확보 작전은 눈물겨웠다. 진득한 전복죽에 섞인 미세한 전복 알갱이를 골라내는 데는 핀셋이 동원됐다. 10그릇에서 전복을 채취하는 데 4∼5시간이 걸렸다.

결국 전복의 세계에서 성공적으로 구원된 이 PD는 요즘 또 다른 맛의 수렁에 빠져들었다고 했다. “아직 정확히 그것이 뭔지는 밝힐 수 없습니다. 패스트푸드라는 것까지만 알려드리죠. 전복죽만 먹을 때는 ‘만날 이 밍밍한 것만 먹어야 돼?’ 하며 툴툴댔는데… 한식이란 역시 우수한 것이더군요. 이 새로운 아이템, 그러니까 패스트푸드의 일종은 ‘황제 다이어트’로 절 2kg 찌게 했습니다. 단 4일만에요. 너무 느끼해서 간식으로 김치찌개를 먹었던 게 화를 더 키운 것 같습니다. 이것이 뭔지는 아직 밝힐 수 없습니다.”

임희윤 기자 imi@donga.com
#먹거리X파일#전복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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