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또만나/반또 현장]뮤지컬을? 그것도 내가 주인공? 그게 가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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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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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을 무대에 올려주는 사람… ‘인생뮤지컬’ 김효진 대표

21일 인생뮤지컬 촬영 현장. 김효진 대표(왼쪽)가 이승혜 씨(오른쪽 끝)와 다른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다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1일 인생뮤지컬 촬영 현장. 김효진 대표(왼쪽)가 이승혜 씨(오른쪽 끝)와 다른 배우들에게 연기 지도를 하다 웃음을 터뜨리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뮤지컬 주인공은 멋있다. 그만큼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은 별로 없다. 뮤지컬 주인공의 노래 주제는 대개 둘 중 하나다. ‘나는 이런 사람이야’(아이 앰 송)라거나 ‘나는 이걸 할 거야’(아이 원트 송)나. ‘나’를 이렇게 앞세우는 예술장르가 또 있을까.

2009년 외국계 회사를 다니던 한 여성이 미국발 금융위기로 구조조정을 당했다. 심심풀이로 다니기 시작한 뮤지컬 동호회에서 ‘난 잉여인력’이라는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는 경험을 하고 그는 생각했다. 사실은 모두가 가슴 속에 이야기 하나씩은 품고 있는 것 아닐까? 누구나 뮤지컬 주인공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해서 2011년 ‘인생뮤지컬’이라는 회사가 나왔다.

당신 인생의 이야기

21일 서울 노원구 공릉동의 한 빌라에 젊은 남녀 8명이 무대 분장을 한 채로 모여 있었다. 이들이 하고 있는 작업은 뮤지컬 제작. 그것도 창작 뮤지컬이다.

승혜: 그럼, 요리는 요리사만 만드나요?

요원: 뭐요, 댁도 쥐같이 숨어서 그리시려고? (비아냥거림) 찍찍, 찍찍찍찍?

“요즘 들어 아무나 예술가, 그건 완전 정신적 공해야, 그런 장난 이제는 그만해∼.”

노래를 부르는 두 사람을 김효진 인생뮤지컬 대표(37·여)가 멈춰 세웠다. “지금 화면에 요원이 하나도 안 보이네.” 안무를 맡은 최현이 씨(28·여)는 “항상 조명 빛을 받는다는 느낌이 들게 서야 돼요”라고 조언했다.

그 조명이 비추고 있는 무대는 김 대표가 자기 집에 만든 간이 스튜디오다. 검은 벽과 커튼이 무대이고 촬영 장비는 아이폰, 음향기기는 아이패드라는 식이지만 화면에 찍힌 모습은 제법 그럴싸하다. 몇 번 합을 맞춘 뒤 촬영 영상을 리뷰한 배우들은 “여기서 자세가 안 나오네”라며 의견을 내거나 “저 방향을 보고 해도 돼요?”라고 연출자에게 물었다.

지금은 광고회사 직원이지만 뮤지컬 오디션을 본 적도 있다는 이수진 씨(31·여)는 요염한 포즈를 취하는 부분이 쑥스러운 모양이었다. 악역인 정부요원 역을 맡은 윤명훈 씨(30·현대백화점그룹 인재개발원 대리)는 열연으로 칭찬을 들었다. 수진 명훈 씨를 비롯한 조연 배우 4명은 모두 자기 자신 역을 맡은 주연 배우이자 의뢰인인 이승혜 씨(27·여)와 독서모임을 같이 하는 회사원들이다. 무보수로 이 작은 공연에 참여했다. 명훈 씨는 “항상 깍듯하게 생활해야 하는데 이런 연기를 해보니 좀 시원하다”며 “집에서 ‘넌 이제 끝장이야’ 같은 대사를 혼자 연습하는 걸 보고 어머니가 걱정하시더라”고 웃었다.

엔지니어에서 배우로

‘당신의 이야기는 이미 훌륭한 뮤지컬입니다. 우리는 보기 좋도록 도와 드리는 것뿐입니다.’

인생뮤지컬 홈페이지(www.lifemusical.co.kr)에 적힌 설명이다. 이 회사는 의뢰인의 인생 이야기를 소재로 창작곡과 대사가 있는 5분 분량의 미니 뮤지컬을 만들어 영상으로 제작한다. 의뢰인도 주연 배우가 돼 이 뮤지컬에 참여한다. 의뢰인에게 간단한 발성, 노래, 춤까지 초속성으로 가르쳐 준다.

“그래도 노래가 안 된다”며 울상인 승혜 씨는 대기업 건설회사의 엔지니어다. 그는 “살아오면서 늘 쉽고 간단한 선택을 해왔다”고 고백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고에 갔고, 의대에 가기 싫어 공대를 택했다는 식이었다.

그는 지난해 8월부터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휴일과 휴가만 기다리며 사는 회사 생활이 싫어 악기든 춤이든 뭐든 하고 싶었는데 그림이 제일 만만했다. 매일 그림을 한 장씩 그려 페이스북에 올렸다. 답답한 시스템 속에서 벌인 작은 외도였다.

이날 촬영한 뮤지컬의 제목은 ‘007빵 창작면허’. 줄거리는 3월 첫 만남에서 김 대표가 승혜 씨를 2시간 인터뷰한 뒤 만들었다. 아마추어 예술 활동을 금지하는 미래사회에서 승혜 씨가 몰래 그림을 그리다 정부요원에게 걸린다. 앞으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서명을 하는 승혜 씨 앞에 그림 속의 인물들이 살아 나타나 요원에게 ‘007빵’ 게임을 제안하고, 게임에서 진 요원은 그림 속으로 끌려간다. 유머러스한 분위기인 데다 작곡가 송주연 씨(25)가 쓴 곡은 007 영화의 주제가를 연상시키는 ‘빰빰빰빰’ 하는 메인 테마가 깔려 있어 듣기만 해도 어깨가 들썩거린다.

웹 기획자에서 작가로

“연습하다가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사람의 몸이라는 게 사무실에 앉아 있도록 설계된 게 아니구나. 사람이 원래 몸을 움직여야 하는구나….”

자신이 특별히 감정 기복이 없는 사람이고 자기표현을 잘 못하는 사람이라는 승혜 씨는 인생뮤지컬에 참여한 소감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16일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전부터 공부하고 싶었던 ‘적정기술’(저개발국·저소득층에 싼값으로 즉시 적용해 혜택을 줄 수 있는 기술)을 배우러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게 목표다.

“내가 좋아하는 일이지만 그 일을 하다가 ‘사회 부적응자’가 되는 것 아닐까, 그 일을 평생 계속할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거든요. 그런데 인생뮤지컬을 하면서 ‘그래도 한번 내가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2년 전에 인생뮤지컬 김효진 대표가 경험했던 자아발견과 승혜 씨의 결심이 묘하게 겹친다. 김 대표는 요즘 프리랜서 웹 기획자로 일하면서 뮤지컬 아카데미에서 작가 수업을 받고 있다. 대학원에서 콘텐츠기획 분야를 공부할 예정이다. 그는 결혼을 앞둔 커플이나 은퇴한 베이비부머가 인생뮤지컬의 잠재고객이 될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

“어느 수준으로 연습을 해서 노래와 춤으로 자기를 표현할 수 있게 되면, 누구나 강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돼요. 지금은 그 좋은 걸 뮤지컬 배우만 느끼는 거죠.”

인생뮤지컬 가격은 ‘시가’지만 대략 5분 분량에 200만 원 안팎. 소극장에서 하길 원할 경우 대관료는 별도지만 제작비와 레슨비는 따로 내지 않아도 되며, 연습은 2시간씩 7, 8차례 한다. 다만 승혜 씨는 ‘특별 할인가’를 적용받았다고 한다. 김 대표는 “몇 번 해보니 주연 배우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보다는 재미로 끌어들이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게 됐다”며 “연습은 전혀 혹독하지 않은 수준”이라며 웃었다.

장강명 기자 tesomiom@donga.com
#반가워 또만나#뮤지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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