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첫 철수한 김용구 사장 “개성공단은 북한 뜻대로 움직여 그들에겐 사업 아닌 정치하는 곳”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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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 개성공단은 사업이 아니라 정치하는 곳이더군요.”

개성공단 입주기업 가운데 처음으로 2009년 자진 철수한 모피의류업체 ‘스킨넷’의 김용구 사장(45·사진)은 지난달 29일 가진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김 사장은 2008년 7월 금강산 관광객 박왕자 씨가 북한군 총격에 사망하고 12월 북한이 남측 인원과 통행시간을 제한한 ‘12·1 조치’를 내놓자 회의가 들었다. 결정적 계기는 이듬해 3월 한미 연합 군사훈련 키리졸브 때 북한이 남측 인력의 귀환을 금지한 것이었다. 내려오기로 한 스킨넷 직원의 발이 묶이자 그의 아내와 어머니는 회사로 찾아와 “내 아들 살려내라”며 통곡했다. 개성공단을 믿지 못한 바이어들 때문에 주문량은 30% 급감했다.

김 사장은 “개성공단은 북한 맘대로 움직이는 곳이라는 걸 그때 확실히 깨달았다”고 회고했다. 결국 입주한 지 1년 10개월 만인 2009년 6월 개성공단에서 철수했다. 공단에 있던 재봉틀 40대 중 15대를 “수리한다”며 빼내고, 모피 원자재도 남쪽으로 옮겼다. 약 1억 원을 들여 경기 파주시에 임시 거처를, 중국 베이징(北京)에 공장을 마련했다.

이윽고 폐업 신고를 하자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 관계자가 “당신에게 총칼을 들이댄 적도 없는데 왜 가는지 모르겠다”며 보내줬다. 김 사장은 “많은 사장들이 철수를 원하면서도 투자 금액이 너무 많아 차마 빠져나오지 못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김 사장은 현재 개성공단 상황을 ‘제2의 1·4 후퇴’라고 했다. “개성공단의 주인인 기업들이 하루아침에 설비와 제품을 다 놓고 쫓기듯 내려왔습니다. 6·25 때 중공군에 밀려 남으로 내려온 것과 뭐가 다릅니까.” 그의 언성이 높아졌다.

그는 정부의 잔류 인원 철수 결정에 대해 “잘했다. 개성공단은 차라리 폐쇄하는 게 낫다”고 주장했다. 사람이 다 빠져나오면 건물과 설비가 북한에 남더라도 북한이 개성공단을 정치적 협상에 악용할 수 있는 여지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그는 “남북 경협사업을 정상적으로 가동하려면 애초에 공단을 제3국에 만들거나 남북에 모두 만들었어야 했다”며 “지금이라도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기업들이 본 피해에 대해서는 “북핵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개성공단의 정상화는 어려울 것”이라며 “도산하는 입주기업과 협력회사가 속출하기 전에 정부가 책임감을 갖고 하루빨리 손실을 충분히 보상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 사장은 개성공단 가동 중단이 우리 산업계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개성공단 입주기업으로부터 제때 제품을 못 받은 중소 패션업체들이 곧 부도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며 “이 때문에 다른 협력회사들도 패션업체에 납품을 꺼리고 있어 소문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이어 “개성공단 입주기업들이 국내에서 대체 공장과 인력을 물색하면서 숙련공의 몸값과 용역비가 최근 20∼30% 올랐다”고 덧붙였다.

강유현·김호경 기자 yh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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