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플러스] ‘드랙퀸’ 하리수, 당찬 미소 속에 감춰진 휴먼 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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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4월 26일 19시 00분


●상업적 악용-성접대 등 상처…선택적기억상실증에 걸려
●사회적 소수자들 대변…장미성형 기금마련 등 봉사활동
●“나를 버티게 하는 힘은 가족과 동료들의 애정과 응원”

가수 겸 연기자 하리수. 사진ㅣ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가수 겸 연기자 하리수. 사진ㅣ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오랜만이네요, 하리수 씨.”, “그러니까요!”

가수 겸 연기자 하리수(38)는 인사부터 당찼다. 과거 밝고 당당했던 모습 그대로였다.

“오랜만이라고 해도 예전과 똑같은 느낌이에요. 국내 활동을 위해 살을 열심히 뺀 것 빼고요.”(웃음)

하리수는 4월 초 개막한 뮤지컬 ‘드랙퀸’을 통해 국내 활동에 복귀했다. ‘드랙퀸(Drag Queen)’은 클럽 블랙로즈의 드랙퀸(남자 동성애자, 여장 남자) 쇼걸 4인방의 우여곡절 이야기를 담았다. 이 가운데 하리수는 클럽 사장이자 프로 쇼걸 오마담 역할을 맡았다.

그동안 하리수에게 작품이나 방송 출연 제의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화제몰이를 위한 단편적 방송 출연이나 의미가 없는 작품은 하지 않았다.

“그동안 중국과 일본에서 연기자와 가수로 활동하고, 국내에서 사업을 하느라 많이 바빴어요. 하지만 국내 활동을 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단발적 화제 유발을 위한 출연 제의가 많았기 때문이에요. ‘드랙퀸’은 달랐어요. 뜻 깊은 내용을 담고 재미도 있죠. 대본을 읽고 바로 하겠다고 했어요.”

하리수는 인터뷰 내내 호탕하게 ‘하하’ 웃으며, 작품과 자신의 삶에 대해 솔직하게 이야기 해나갔다.

●해외에서는 연기자, 국내에서는 트랜스젠더

“오히려 해외 대중들이 저에 대해 더 잘 알아요. 한국에서는 그저 트랜스젠더 혹은 연예인, 이 정도로 비춰지고 있죠.”

하리수는 지난 공백기 동안 해외에서 연기자와 가수로 꾸준히 활동해왔다.

“2004년에 주연을 맡은 홍콩영화 ‘도색’은 베를린 영화제에 초청받기도 하고, 말레이시아에서도 영화를 찍었어요. 일본, 중국에서는 드라마 출연은 물론, 정규 앨범을 출시해 현지 음악 무대에서도 활동했죠.”

하리수는 “해외 활동이 좋았던 이유가 또 한 가지 있다”며 “권위적인 문화가 없다. 말레이시아에서 영화를 촬영하며 감독과는 지금도 무척 친한 친구로 지낸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해외 활동에 집중한 덕분에 국내에서는 이전에 못 느끼던 자유로움도 느꼈다.

“예전에는 길을 지나가면 ‘하리수다!’하고 관심을 받았는데, 이제는 ‘하리수 닮았는데, 맞나?’이러면서 지나치시더라고요. 밖에서도 개인적인 시간을 즐길 수 있었죠.(웃음)”

●‘드랙퀸’에서 흘리는 눈물의 이유

“뮤지컬 내용에 공감하기는 하지만, 전부 제 이야기는 아니에요.”
가수 겸 연기자 하리수. 사진ㅣ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가수 겸 연기자 하리수. 사진ㅣ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하리수는 최근 있었던 뮤지컬 ‘드랙퀸’ 시사회 당시 연기를 하며 많은 눈물을 쏟았다. 이에 하리수는 “극 중 역할에 몰입을 했을 뿐 다른 이유는 없다”라고 설명했다.

“저는 극 중 오마담처럼 아버지와 헤어져 살지도 않았고, 어머니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아요. 특히 연애할 때의 모습은 무척 다르죠. 제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 못하는 상황은 아니잖아요. 과거에 연애할 때는 늘 남자들이 저에게 매달렸지, 제가 이별로 가슴 아픈 적은 별로 없었거든요.(웃음)”

그는 오히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와 닮았다”며 “내 이야기도 있지만, 다른 일반인 친구들, 트랜스젠더 친구들, 게이 친구들의 상황이 모두 담겨 있다. 그 상황들을 떠올리며 연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만큼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이다. ‘성소수자들의 이야기일 것 같다’는 편견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극 중 클럽인 블랙로즈 클럽은 실제로 하리수가 국내에서 운영하는 클럽인 믹스트랜스(Mix Trans)와 비슷하다.

“다른 클럽들은 음성적으로 몸과 웃음을 팔지만, 믹스트랜스는 극 중 블랙로즈처럼 열정과 재능을 팔아요. 그 뜻이 상응돼 흔쾌히 작품에 출연하겠다고 마음먹은 이유도 있죠.”

해외 활동과 사업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하리수는 뮤지컬을 위해 자신의 모든 노력을 쏟고 있었다.

“제가 쑥스러움이 많아서 연습 때 제 역량을 다 발휘하지 못해요. 하지만 실제로 무대 위에서 연기하는 것을 보면 다들 놀라요. 제가 대본이나 동선을 빨리, 완벽하게 익히는 편이거든요. 또 패션에도 관심이 많아서 옷도 제가 직접 다 골라요. 오마담이 입는 옷의 90%는 다 제 옷이에요.”

공연을 꼭 보러 오라며 기자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까지 한다.

“정말 재미있어요. 꼭 오셔야 해요!”(웃음)

●내 상황 악용하거나 성접대 제의도…선택적기억상실증 걸려

하리수는 시종일관 밝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에게 힘든 날도 많았을 것. 그는 “버티기 위해 ‘선택적기억상실증’이 생긴 것 같다”고 고백했다.

“저는 기억하기 싫은 건 싹 다 잊어버려요. 컴퓨터에서 쓸데없는 것을 휴지통에 버리듯 저도 머릿속에서 나쁜 기억은 다 선택해서 지워버리죠. 오랫동안 좋지 않은 일을 겪다 보니까 몸이 스스로 그렇게 되나 봐요.”

하지만 그는 힘든 경험을 묻는 질문에 시간이 오래 전 있었던 단편적인 기억들을 떠올렸다.

“사실 하리수라는 이름으로 데뷔하기 전 연예계를 접했을 때, 그만 둘까란 생각을 했어요. 당시 기획사나 내 상황을 아는 사람들이 저를 상업적으로 악용하려고만 하고, 성접대를 요구하는 경우도 있었고요. 연예계에 환멸을 느꼈지만, 이왕 시작하는 것 제대로 도전 해보고 후회하는 게 더 멋있다고 생각해 당시 화장품 CF를 하며 공식 데뷔를 했죠.”

●어느샌가 사회적 소수자들의 대변인으로

다양한 경험들을 겪어서 일까. 하리수는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수자들을 향한 마음이 무척 커져 있었다.

그가 작품을 볼 때도 가장 크게 고려하는 것은 작품에 담긴 메시지다. 하리수가 2001년 영화 ‘노랑머리2’에 출연한 것도 그런 의도에서였다.

“전작인 ‘노랑머리1’ 때문에 ‘노랑머리2’도 선정적일 것이라고 생각한 분들이 많아요. 알고 보면 그런 내용이 아니고 왕따나, 성소수자, 연예계에 입문해 이용당하는 이들에 관한 이야기거든요. 소수자들에 대한 메시지가 담긴 영화인데 다른 기대를 가지고 본 분들이 많아 흥행에 실패한 것 같아요.”

“그 영화 전에 홍석천 오빠가 찍은 ‘헤라 퍼플’은 99년부터 계속 출연 제의가 들어왔었는데, 트랜스젠더가 남자를 유혹하고 피를 빠는 마녀처럼 표현이 되더라고요. 당연히 안 하겠다고 했죠.”
가수 겸 연기자 하리수. 사진ㅣ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가수 겸 연기자 하리수. 사진ㅣ국경원 동아닷컴 기자 onecut@donga.com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하게 된 하리수. 그는 스스로도 자신이 떠안은 책임감과 해야 할 일들을 알고 있었다.

“제가 좋든 싫든 언젠가부터 성소수자를 대변하는 역할을 맡게 됐더라고요. 제가 활동하기 전과 후에도 트랜스젠더로서 활동한 분들이 있지만 저로 인해 헌법도, 호적도 바뀌며 트랜스젠더 연예인 1호라는 타이틀을 갖게 됐어요. 그러면서 욕도 많이 먹고, 짊어져야 할 책임감도 생겼죠. 제가 해야 할 일들을 열심히 해나갈 거예요.”

그는 실제로도 방송활동 뿐 아니라 소수자들을 돕는 봉사활동도 하고 있다.

“지난 2009년 ‘하리수 장미성형’이라는 말이 화제가 됐어요. 제가 장미성형이라는 성형을 했다는 말이 아니고, 장미성형이라는 기금을 뜻하는 거예요. 유방암 환자, 화상 환자, 언청이 환자, 성전환 환자 등을 돕기 위해 기금을 모으러 다녔어요.”

누구보다 열정적인 삶을 살고 있는 하리수. 힘든 상황 속에서도 그를 일으키고, 새로운 힘을 주는 것은 무엇일까.

“저는 아무리 힘들고 어렵고 아파도, 그 가운데에 분명 즐겁고 기쁜 일은 있음을 알아요. 예를 들어 지금 제가 계속되는 공연으로 몸은 힘들더라도, 나를 진정으로 이해해주고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기죠. 관객들이 따뜻한 후기들도 남겨주고, 그것을 보면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또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이 그렇듯, 하리수도 곁에서 그를 응원해주고 사랑해주는 이들이 가장 큰 힘이다.

“함께 무대에 서는 이들이 ‘수고했어요. 내일도 파이팅 해요’라고 남기는 메시지, 그리고 변함없이 날 응원해주는 신랑, 항상 ‘자랑스럽다. 사랑한다’고 말해주시는 시어머니, 아침마다 밥 한 끼라도 더 먹이시려고 하는 어머니. 저는 배 나온다고 자꾸 안 먹으려고 하지만요.”(웃음)

동아닷컴 원수연 기자 i2overyou@donga.com
사진ㅣ동아닷컴 국경원 기자 one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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