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근혜정부의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는 과거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한 반성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정책 실천에 착수하자마자 북한의
잇따른 도발과 위협으로 난관에 봉착해 있다. 유일한 남북경협 대상지이던 개성공단은 가동 후 10년 만에 처음으로 잠정 폐쇄 상태에
빠졌다. 대북정책을 성공적으로 펼치기가 이렇게 어렵다. 동아일보와 한반도선진화재단은 지난달 23일 서울 중구 충무로 한선재단
회의실에서 ‘통일의 길, 북한의 정상국가화’라는 주제로 세 번째 공동 세미나를 열고 바람직한 대북정책의 방향에 대해 논의했다. 》
질문 1: 개성공단 어떻게 할 것인가
남북 간 최대 현안 중 하나인 개성공단 문제에 대해 ‘가동중단 장기화에 대비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이 많았다. 남근우 한양대 교수는 “4월 1일 최고인민회의에서 대외무역 다각화와 투자 활성화를 정책으로 택한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 수순으로 몰고 가는 걸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반면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은 “북한이 광물자원 수출로만 15억 달러 이상을 벌어들이는데 연간 8600만 달러인 개성공단 임금은 아깝긴 해도 포기하려면 포기할 수 있는 돈”이라고 말했다. 조영기 고려대 교수는 “북한이 과연 개성공단을 유지하려는 의사가 있는지부터 짚어봐야 한다”고 말했다. 북한 근로자의 임금이라는 이익보다 개성공단을 통해 한국과 자본주의 소식이 전파되면서 발생하는 체제 위협을 더 크게 여기지 않느냐는 것이다.
북한은 다른 남북경협에서도 경제적 이득은 취하지만 체제유지에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요소는 배격하는 이중적 태도를 취해왔다. 내심 남북경협의 확대를 원하면서도 위기를 조장함으로써 북한 내부에서는 체제 단속 효과를, 한국 내부에서는 남-남 갈등을 유발하는 작전을 써왔다는 분석이다. 개성공단 가동중단도 그 연장선상이라고 참석자들은 진단했다. 이 때문에 북한의 천안함 폭침으로 단행됐던 5·24조치(방북 및 남북경협 중단)를 해제하는 방안은 전문가 대부분이 반대했다. 현 시점에 5·24조치를 무조건 해제하는 건 북한에 ‘버티면 해결된다’는 잘못된 신호를 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차원의 대북제재가 진행 중인데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들어 5·24조치를 해제하는 건 국제공조에도 나쁜 선례를 남긴다”고 말했다. 향후 북한과 상대하기 위해서는 호혜주의에 바탕을 둔 ‘네트워크 상호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질문 2: 올바른 대북정책을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
대북정책의 목표를 북한의 정상국가화로 설정하는 패러다임 전환을 이뤄야 한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를 위해서는 △국내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이 국제규범에 부응하는 정상국가로 변하는 것을 통일정책의 목표로 정한 뒤 △국제협력과 설득을 도구로 활용하는 3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 남북관계의 특성과 한계를 정확히 이해하는 것도 필요하다.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대북정책은 북한이라는 골치 아픈 상대와 벌이는 ‘양자게임’”이라며 “지난 20년간 대북정책이 실패했다는 것은 역으로 북한의 대항 능력이 나쁘지만은 않다는 걸 의미한다”고 말했다. 특히 북한은 한국의 카드를 훤히 들여다보고 말(대남정책)을 쓰는 반면 우리는 북한의 패를 알 수 없는 ‘판단능력의 비대칭성’과 북한을 얕잡아보는 우리 내부의 편견이 허를 찔리는 원인으로 지적됐다. 양운철 실장은 “남북경협이 잘 안되는 이유도 북한이 경제효과의 확산이나 자원의 가장 효율적인 배분보다 남북관계라는 게임으로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자게임에서 ‘팃포탯(tit-for-tat·치고받기)’이 지속될 경우 소모전 양상이 돼 결국 국력이 약한 북한이 더 큰 손실을 입게 된다는 점을 북한이 깨닫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문 3: 북한 주민에 어떤 정보 제공할까
북한의 변화를 위해서는 외부정보 유입을 늘려야 한다는 데 이견이 없었다. 북한 주민들이 바깥세계에 대해 많이 알수록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에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 정권 비방 일변도의 대북전단에 대해서는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많았다. 탈북자 출신인 김병욱 동국대 강사는 “대북전단을 받아볼 북한 주민 처지에서는 김정은에 대한 비난보다 한국의 평균 임금이 얼마이고 그 돈으로 어떤 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소개받는 것이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에서 북한의 실상을 정확히 알리는 통일교육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학생들에게 북한을 생지옥이라고만 가르칠 게 아니라 북한의 실생활을 알게 해 면역력을 키우고 대한민국 정체성에 긍지를 심어주는 교육을 병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참석자 (가나다순)
구본학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 김병욱 동국대 강사 남근우 한양대 연구교수 조영기 고려대 교수 박형중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양운철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 우승지 경희대 교수 이수석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수석연구위원 이용환 한선정책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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