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에 학비고생 부모님께 죄송하고… 의원들 반값등록금 침묵 야속해서…”
30세 미대 복학생 정종환씨 설치… 철거 요구에 실랑이 끝 직접 부숴
어버이날인 8일 오전 8시 10분경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정문 앞 인도에 사람 키만 한 얼음상(像)이 놓였다. 높이 180cm, 폭 80cm가량으로, 머리에는 검은색 학사모를 쓰고, 가슴 부위는 구멍이 뻥 뚫린 채 국회를 향해 무릎을 꿇고 앉은 사람의 형상이었다.
얼음상 제작자는 국민대 미대 회화과 졸업반인 정종환 씨(30·사진). 그는 광주에서 조그만 해장국집을 운영하며 뒷바라지를 하고 있는 부모님에게 죄송하고 고마운 마음에서 어버이날 선물로 얼음상을 직접 깎았다고 했다. “해마다 나이만 먹고, 효도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제 마음을 담았습니다. 카네이션은 왠지 공허해서요.” 그런데 왜 하필 국회 앞에 설치했고, 가슴은 뻥 뚫어놨을까.
“정치권이 총선이나 대선 때만 해도 반값등록금을 이뤄주겠다고 했잖아요. 그런데 올해 들어서는 반값등록금 이야기는 조금도 나오지 않더라고요. 야속했습니다.” 정치인들이야 반값등록금이라는 공수표를 남발하고 ‘나 몰라라’ 해도 그만이겠지만, ‘혹시’ 하고 일말의 희망을 품었던 대학생들은 다음 학기 등록금을 마련하느라 가슴을 도려내는 느낌을 받았다는 설명이었다. 막막한 대학생의 심정을 구멍 난 가슴으로 표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10년 전인 2003년 대학에 입학했지만 여전히 재학생이다. 군(2005∼2007년)에서 제대를 한 뒤 휴학을 오래한 까닭이다. 그는 “동생이 대학생이 되면서 학기당 500만 원이나 되는 등록금, 그에 맞먹는 재료비까지 집에서 대줄 형편이 안 됐다”고 말했다. 학비, 생활비를 벌기 위해 친구와 디자인사무소를 열었다가 문을 닫기도 했다. 일당 8만 원짜리 ‘합숙 막노동’도 해봤다고 한다. 2011년 복학해 졸업을 앞두고 있지만 취업의 문은 좁기만 하다. 정 씨는 “정치권이나 사회가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러나 조그마한 변화를 위해서라도 뭔가를 시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얼음상이 설치된 지 30분 정도 지났을까. 국회 방호원들이 달려 나와 얼음상을 치우라고 재촉하기 시작했다. 정 씨는 약간의 실랑이를 벌이다 밤을 새워 조각한 작품을 스스로 허물어뜨렸다. 동강난 머리, 가슴, 다리가 인도 위에 널브러졌다. ‘국회의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고 묻자 정 씨는 “살려주세요. 먹고살게 도와주세요”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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