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창중 전격경질]워싱턴 성추행前 뉴욕에서도 추태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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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 靑대변인 性파문… 도피성 귀국뒤 경질

“청와대 대변인이 대통령의 ‘입’이라는 비유는 포괄적이지 못하다. 대통령의 말을 단순히 옮기는 입이 아니라 대통령과 정권의 수준을 압축적으로 보여 주는 얼굴이고, 분신이기 때문이다.”

2006년 4월 한 신문사의 논설위원이 당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사퇴한 청와대 대변인을 비판하며 쓴 칼럼의 일부다. 이 글을 쓴 논설위원은 6년 10개월 뒤 그 자리에 올랐다. 평소 당선인 수석대변인, 인수위 대변인, 청와대 대변인으로 3번이나 대통령의 부름을 받은 것을 자랑하곤 했다.

‘대통령의 분신’이라며 청와대 대변인의 엄중한 위상을 강조했던 윤창중 전 대변인(사진)이 ‘성추문’ 의혹에 휘말려 9일 오전(현지 시간) 미국 현지에서 임명 74일 만에 전격 경질됐다. 박근혜 대통령이 숙소인 워싱턴 블레어하우스에서 밤늦도록 상·하원 합동 영어 연설을 준비하고 있던 그 순간, 자신의 일정을 챙겨 주기 위해 고용된 주미대사관 여대생 인턴을 붙들고 호텔 바에서 술을 마신 데다 이 여대생을 성추행까지 했다고 경찰에 신고된 것이다.

앞서 윤 전 대변인은 방미 일정의 첫 기착지였던 뉴욕에서도 가운을 입은 상태에서 호텔 방으로 담당 인턴을 불러 맥주를 시키는 등 수치심을 느낄 정도의 부적절한 행동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윤 전 대변인은 또 이남기 홍보수석에게 “집사람이 아프다. 사경을 헤맨다”고 말한 뒤 혼자서 비행기를 탄 것으로 밝혀졌다.

박 대통령은 첫 방미에서 대북 정책인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의 공감대와 ‘코리아 세일즈’ 실리를 얻은 것 외에도 유창한 영어 실력, 개성 넘치는 패션에 따른 현지 호응 등 부수적인 성과까지 한 아름 들 뻔했지만 성추문 의혹 사건으로 ‘국제적인 나라 망신’의 꼬리표를 단 채 귀국했다.

▼ 국격에 침뱉은 ‘靑의 입’… 불통人事가 방미 성과에 먹칠 ▼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10일 오후 10시 반경 긴급 브리핑을 갖고 “국민 여러분과 대통령께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유감을 표명했다. 하지만 이 수석의 유감 표명을 놓고 박 대통령이 국민에게 사과해야 할 일을 홍보수석이 대통령에게 사과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해외 방문 중 대변인 경질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지만 이번 사건은 ‘예고된 참사’라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24일 당선 이후 사실상 ‘1호 인사’로 윤 전 대변인을 ‘깜짝 인선’했을 때도 야당은 물론이고 여당 내에서도 ‘강경 우파로 사회 분열적 인사’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거셌다. 취재진 앞에서 테이프로 밀봉된 서류봉투를 열고 인선을 발표해 ‘밀봉인사’라는 신조어를 만들었으며 스스로를 ‘인수위 안의 단독기자’라고 지칭해 빈축을 샀다.

박 대통령 최측근들도 여러 통로로 박 대통령에게 문제를 지적했고 박 대통령도 한때 윤 전 대변인에 대해 “잘 모르면 겸손하기라도 해야 할 텐데…”라며 불만을 토로한 적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그는 취임식 전날인 2월 24일 청와대 대변인으로 다시 박 대통령의 낙점을 받았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박 대통령이 고심하다 자신을 위해 욕먹으며 일한 사람에게 기회를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윤 전 대변인이 ‘상징적인 국가 벼슬’이라고 했던 청와대 대변인이란 중요한 자리를 세간의 눈높이보다는 자신에 대한 충성도와 기여도에 따라 정했다는 얘기다. 대통령의 인사는 그 자체가 국민에게 던지는 중요한 메시지인데도 이를 가벼이 여긴 것이라는 비판을 받을 만한 대목이다.

새누리당 김성태 의원은 “어물전 망신은 꼴뚜기가 시킨다고 그런 몰지각한 행위를 했다면 청와대도 국민에게 할 말 없는 것”이라며 “윤 대변인은 그동안 제한적으로 이뤄진 인사의 대표적 인물이었기 때문에 더는 이런 일이 재발해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민주당은 ‘인사 참사의 완결판’이라며 박 대통령의 사과 요구와 더불어 국회 차원의 청문회를 추진키로 했다.

전날까지만 해도 “지지율 60%의 벽을 넘을 것 같다”며 대통령의 방미 성과에 고무돼 있던 청와대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면서 당혹해하고 있다. 남양유업 사태 등으로 불합리한 ‘갑을(甲乙) 관계’를 바로잡아야 한다는 여론이 비등한 상황에서 청와대 대변인이 ‘갑’의 권리를 이용해 ‘을’인 인턴을 성추행했다는 논란에 휩싸이게 된 점도 큰 부담이다.

이번 사건을 어떻게 명명백백하게 다루느냐는 청와대에 남은 숙제다. 박 대통령은 사건 발생 하루 뒤인 9일 오전 로스앤젤레스에서 관련 보고를 받고 즉각 경질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의 한 고위 관계자는 “대한민국 대통령의 방미 수행원 자격으로 간 대변인이 현지에서 인턴과 술을 먹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경질 사유다. 성추행 여부와 상관없이 당연한 순서”라며 분통을 터뜨렸다. 다른 관계자는 “우리가 책임을 회피할 이유는 없지만 이제 윤 전 대변인은 사인(私人)으로 수사 과정에서 그를 보호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 전 대변인은 최근 사석에서 미국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백악관 대변인을 지낸 애리 플라이셔가 쓴 ‘대변인’이라는 책을 감명 깊게 읽었다고 전했다. “그 책에 나오는 대변인처럼 내가 불통 논란을 감수하고서라도 말을 아끼는 것이 결국 박근혜 정권의 성공을 가져올 것이다”라고 자신만만해 했다. 그러나 그의 말과 달리 박근혜 정부의 첫 정상회담의 성과를 따져보기도 전에 스스로가 새 정부의 대표적인 인사 실패 사례임을 입증해 보인 셈이 됐다.

동정민 기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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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창중#성추행#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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