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학사정관전형 지원자들에게 사실상 ‘필수 스펙’으로 인식되는 것은 바로 ‘리더 경험’과 ‘봉사 이력’. 특히 정치인, 공직자, 정책전문가 등을 꿈꾸며 행정학과, 정치외교학과 등에 지원하는 학생들은 훗날 국가적 규모의 일을 하는데 필요한 리더십과 이타심을 지녔음을 평가자에게 증명하려는 성향이 강하다. 하지만 각종 봉사활동과 리더 역할을 두루 거친 경험 자체만으로 이타심과 리더십을 입증하려 한다면 큰 오산. 평범한 봉사활동이라도 한 가지를 꾸준히 했을 경우 그 속에서 느끼고 배운 점을 진솔하게 소개한다면 충분히 평가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스토리가 될 수 있다.
2013학년도 고려대 입학사정관전형인 학교장추천전형으로 정경대학 행정학과에 합격한 배주현 씨(18·서울 경성고 졸)는 훗날 경제, 통일, 복지 등 우리나라의 해묵은 과제를 푸는 국정책임자가 되기 위한 첫 단계로 행정학과에 지원했다.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마음, 갈등을 조정해 합리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리더십을 지녔음을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그도 다른 지원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 활용한 스토리가 교과 공부와 교내 동아리활동 등 비교적 평범한 이력이었던 것이 눈여겨볼 점. 과연 배 씨는 어떤 방법으로 자신만의 강점을 드러냈기에 합격의 꿈을 이룰 수 있었을까.
예상문제도 반 전체와 공유… 배려심 부각
배 씨가 입학사정관전형 준비를 시작한 것은 고2 1학기. 목표 대학을 정하자 내신 성적을 더 올리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그는 자신의 성적도 올리면서 반 전체의 성적도 함께 올려보자는 생각을 했다. 시험이 다가오면 각 교과를 충분히 공부해 친구들에게 가르쳐주고 시험 1주 전에는 과목별 예상문제를 학급 전원과 공유했다. 이런 ‘지식 나눔’으로 친구들은 실제로 성적을 크게 올려 배 씨의 학급은 그해 평균성적 1등을 고수할 수 있었다.
“‘전교 1등은 자기 공부밖에 모른다’는 인식을 깨고 싶었어요. 친구들의 성적이 실제로 오르면서 저는 더 수준이 높은 문제를 만들어 제공하면서 제 취약점도 보완했죠.”(배 씨)
자신의 ‘성적 향상기’를 소개하는 것은 자연스레 자신의 이타적 마인드를 인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는 ‘당시에는 내 (공부)시간 측면에서 손해를 보는 것 같기도 했지만 임원으로서 책임감을 가지고 (중략) 친구들에게 도움을 준 것 같아 뿌듯하다’고 자기소개서에 서술했다.
영자신문 동아리? ‘영어’보다 ‘갈등 중재’ 경험!
구성원의 의견을 모아 새로운 일을 추진하는 데 흥미를 느꼈다는 배 씨. 이를 위해 다양한 조직에서 굵직굵직한 리더 경험을 쌓은 것도 사실이다. 그는 고1 때는 학급회장, 고2 때는 전교 학생회 임원직을 수행하면서 동시에 서울시 서부교육지원청이 주관하는 고교생 대의기구 ‘서부 학생참여위원회’에서 지구장을 맡기도 했다. 이 같은 이력에서도 나름의 유의미한 경험을 끌어낼 만했지만 그의 시선은 달랐다. 오히려 3년 동안 교내 영자신문 동아리를 이끌며 구성원 간의 의견 충돌을 효과적으로 중재한 스토리에 주목한 것.
“영자신문 주제회의를 할 때 서로 맡으려는 분야가 겹치다 보니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았어요. 그래서 각자 기사 기획안을 구성해 가져온 뒤 공개심사를 통해 가장 우수한 기획안이 자동으로 선정되도록 했죠. 기사의 질도 당연히 높아졌고요.”(배 씨)
자기소개서? ‘깨알 사례’로 승부
평가자의 마음을 사로잡는 자기소개서의 필수 요건은 ‘진정성’. 여느 지원자라면 공개하기를 꺼릴 수 있는 가정사도 배 씨는 최대한 ‘날것’ 그대로 서술하는 방법으로 진정성을 부각했다.
“중학생 때 갑작스레 가정형편이 기울어 힘들어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성적 향상으로 기쁨을 드리고 싶었어요. 당시 만족스러운 성적을 얻지 못해 힘들어하는 저를 본 아버지는 고려대 정경관에 데려가 동기부여를 해주셨죠. 이 모든 이야기를 자기소개서에 담았어요.”
배 씨는 “서울시립서부노인전문요양센터에서 3년 동안 봉사활동을 한 이야기를 쓸 때는 치매를 겪는 어르신들이 방금 전 배운 동작도 쉽게 잊어버리는 탓에 같은 동작을 4, 5회씩 가르쳐드렸던 생생한 경험을 썼다”면서 “자기소개서는 자신이 강한 인상을 받은 경험을 그대로 담아내야 진정성도 묻어나는 만큼 작성 과정에서 지나치게 다른 사람의 평가에 기대어 내용을 수정하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 이재원 고려대 입학처장 “스펙 걱정? 진부한 자소서부터 점검해야” ▼
고려대의 대표 입학사정관전형인 학교장추천전형은 교과·비교과 활동 모두에서 충실했음을 학교장이 인정한 일반고 학생 중 △성실성 △리더십 △공선사후(公先私後)정신 △전공적합성 △창의성 등 고려대의 인재상을 두루 갖춘 지원자를 선발한다.
2014학년도 고려대 학교장추천전형의 모집정원은 총 630명. 지난해보다 40명이 줄어든 수치다. 이 전형은 1단계에서 서류평가(학생부 자기소개서 추천서) 100%로 모집정원의 3배수 내외를 선발한 뒤 2단계에서 1단계 성적 70%와 면접성적 30%를 합산한 점수로 최종 합격자를 가려낸다. 2단계에서 서류평가(1단계) 성적 반영비율이 지난해보다 10% 높아진 것이 특징.
수험생 사이에선 고려대 학교장추천전형은 교과·비교과 영역 모두에서 최상위 ‘스펙’을 지닌 학생들만이 도전장을 내미는 전형으로 인식되는 만큼 이 전형에 대해 근거 없는 추측이나 오해가 많은 것이 사실이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재원 고려대 입학처장의 설명을 들어보자.
학교장추천전형은 곧 ‘내신 전형’?
고려대 학교장추천전형은 수험생들 사이에서 아예 ‘내신 전형’이라고 불릴 정도로 최상위권의 성적이 ‘필수요건’으로 인식된다. 정말 그럴까.
전형 과정에서 교과 영역을 반영할 때 정량적 계산과정이 있는 것은 사실. 하지만 합격자는 비교과 영역까지 종합평가한 결과를 토대로 선발되기 때문에 ‘누가 내신 성적만으로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는 말할 수 없다고 이 입학처장은 밝혔다.
이 입학처장은 “지원자들은 학교의 추천을 받은 만큼 우수한 내신 성적과 비교과 활동 경험을 지닌 경우가 많은 것은 사실”이라면서 “다만 내신 성적이 아주 탁월하지 않더라도 교내 활동에 적극 참여해 성취를 이룬 학생, 임원활동을 안 했지만 자신이 속한 그룹에서 리더십을 발휘한 학생도 얼마든지 좋은 평가를 받는다”고 말했다.
학습동아리, 봉사활동 경험… 없으면 불합격?
수험생들이 입학사정관전형 지원을 앞두고 유심히 살피는 것은 바로 학교 홈페이지에 게시된 전형 안내문. 이 안내문을 해석하는 과정에서 각종 편견이나 오해가 생기기도 한다.
고려대 홈페이지에 게시된 입학사정관전형 안내문에는 ‘친구와 함께 하는 학습동아리 활동, 고교시절에 체득한 자기주도학습이나 협동학습의 경험을 어필하도록 교사가 학생을 지도하면 좋다’는 취지의 내용이 있다. 그래서일까. 친구들과 협동하며 공부한 경험은 이미 많은 수험생의 자기소개서에서 ‘단골’ 소재가 됐다.
이에 대해 이 입학처장은 “관심 분야와 관련된 학습동아리 활동은 실제로 전공적합성을 확인하는 근거자료가 된다”면서 “학습동아리와 협동학습을 했다는 사실을 늘어놓기보다는 그 과정에서 담당한 역할과 기여한 바를 설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봉사활동 이력은 꼭 필요할까. 이 입학처장은 “학교장추천전형 지원자는 그야말로 ‘추천’을 받은 학생인 만큼 어느 정도 신뢰를 토대로 평가를 하기 때문에 꼭 특정 봉사활동이나 학생회 활동을 요구하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한편 이 입학처장은 “평가과정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자기소개서 기술 내용에 별 차이가 없는 것”이라면서 “동아리 리더를 맡은 경험을 밝힌다면 ‘구성원 사이의 의견 다툼을 중재했다’ ‘따돌림당한 학생을 잘 도왔다’는 식의 진부한 서술에 그치지 말고 리더의 경험이 준 교훈이나 자신의 삶에 미친 영향을 구체적으로 기술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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