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10년째 살고 있는 이범석 씨(41)는 최근 원-엔 환율을 보면 마음이 심란하다. 장남이라 한국에 계신 부모님에게 매달 용돈을 보내는 상황에서 ‘아베노믹스’ 여파가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까지만 해도 100엔당 1400원을 넘던 환율이 최근 1100원대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이다. 매달 부모님께 원화로 40만 원을 보내던 이 씨. 그는 6개월 전만 해도 2만8000엔가량을 환전해 송금하면 됐지만 최근에는 3만6000엔을 보내야 한다. 부모님이 받는 돈은 같지만 이 씨가 보내야 할 돈은 약 30% 늘어난 셈이다. 이 씨는 “부모님 용돈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조달해 오는 생필품이 많아 살림이 팍팍해졌다”며 “엔화 약세가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아 미리 원화로 바꿔둘 계획”이라고 말했다.
○ 환율, 실생활 곳곳에 영향 미쳐
글로벌 환율전쟁이 벌어지면서 환율로 울고 웃는 이들이 늘고 있다. 환율 변동은 누군가 이익을 보면 다른 한쪽에서는 손실을 보게 되는 ‘제로섬’ 게임에 가깝다. 경기 전반뿐 아니라 실생활 곳곳이 환율의 영향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경제활동을 하는 국민이라면 환율 지식인 ‘환Q’를 높여야 한다”고 말한다.
환율 변동으로 바로 영향을 받는 이들로는 자녀를 유학 보낸 ‘기러기 아빠’나 유학생을 꼽을 수 있다. 이들은 원화를 외화로 바꿔야 하므로 원화 가치가 떨어질수록 손해를 본다.
금융회사 부장인 김모 씨는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3월 원-달러 환율이 달러당 1600원에 다가섰던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가슴이 내려앉는다. 기러기 아빠인 김 씨가 미국의 아내와 딸에게 보내는 생활비가 몇 달 새 50% 가까이 늘었기 때문이다.
해외에서 원자재를 수입하거나 상품을 수출하는 기업에 환율은 곧 수익성으로 이어진다. 중소수출기업의 김모 사장은 지난달 일본 거래처를 찾아 납품단가 인상을 요청했다. 엔화 가치가 떨어지면서 엔화로 받는 물품대금이 크게 줄었기 때문이다. 그는 “환율 변동에 따라 거래처와 납품단가를 조정하고 있다”며 “키코(KIKO) 사태로 손실을 본 뒤 금융기관도 믿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키코는 환율 변동 위험에 대비한 파생금융상품이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는 예상을 넘어선 환율 변동 탓에 중소기업에 피해를 주었다.
원화 강세 덕분에 해외여행 경비는 줄어들었다. 수입품의 국내 가격이 낮아서 혜택을 보는 소비자도 늘었다. 반면 일본 업체와 경쟁하는 수출업체들은 가격 경쟁력이 떨어졌고, 일본 관광객 특수를 누리던 명동 상권은 매출이 떨어지고 있다.
○ 글로벌 시대, ‘환Q’를 높여라
전문가들은 글로벌 시대를 맞아 ‘환Q’를 높여야 한다고 조언한다.
최현호 외환은행 외환업무부 차장은 “개인들은 기본적으로 외화예금통장을 하나씩 보유하는 게 좋다”며 “기업들은 선물환 거래를 이용해 환헤지(환율변동 위험 방지)를 하고 상황에 따라 유리한 결제 통화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자주 쓰는 외화를 쌀 때 샀다가 비쌀 때 팔거나 쓰는 방법도 좋은 ‘환테크’다. 외화예금통장에 외화를 모아두거나, 환율 변동에 따라 투자수익이 달라지는 파생결합증권(DLS) 외환선물 등 금융투자상품에 투자할 수도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일본펀드 투자자는 엔화 가치 하락으로 일본기업 실적이 좋아지면서 최근 6개월 수익률이 50%에 이를 정도”라며 “환Q를 활용해도 투자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업은 환율 리스크를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성룡 IBK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개인과 달리 기업은 자금 규모가 크기 때문에 환율을 투자나 투기에 활용하려는 생각은 버리는 게 좋다”며 “국내 금융기관에서 관련 조언을 받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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