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 “스폰서 못 막아… 이럴거면 왜 만드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영란法’ 대폭 후퇴… 공직자 금품수수, 직무 관련때만 처벌
징역-벌금 대신 5배 이하 과태료… 법무부-권익위 법안 수정 합의
金 “현행 뇌물죄와 다를 것 없어… 과잉처벌? 공직자 행동제한 당연”

국민권익위원회와 법무부가 최근 합의한 ‘부정청탁 금지 및 이해충돌 방지법(일명 김영란법)’ 내용을 두고 원안에서 지나치게 후퇴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스폰서 검사’처럼 대가성과 직무 관련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금품 및 향응 수수를 처벌하겠다는 당초 취지가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본보 10일자 A8면… [단독]권익위 - 법무부 ‘김영란법’ 잠정 합의

17일 민주당 김영주 의원실에 따르면 권익위와 법무부는 공직자가 소속기관, 산하기관 등 업무와 관련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품이나 향응을 받았을 때만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최종 수정안에 합의했다. 당초 ‘직무 관련성과 관계없이 누구에게서든 금품을 받으면 처벌할 수 있다’는 원안의 내용이 사라진 것. 법무부가 ‘기존 법률과의 관계를 고려할 때 직무와 관련 없는 금품수수에 대한 처벌은 곤란하다’는 입장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행 형법은 직무와 관련한 부정한 청탁과 함께 금품을 받은 공직자를 뇌물죄로 처벌하고 있다. 최종 수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현행 제도와 크게 달라질 게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직자의 금품수수 행위를 형사처벌하는 내용도 완전히 삭제됐다. 대신 받은 금품가액 5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도록 내용이 바뀌었다. 지난해 8월 권익위가 입법예고한 원안에는 공직자가 100만 원을 초과하는 금품을 받으면 3년 이하 징역 또는 수수금품의 5배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돼 있었다.

이 같은 내용의 최종 수정안에 대해 당초 법안을 주창하고 입안했던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사진)은 17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이럴 거면 법을 왜 만드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대로 입법이 되면 실망한 국민들의 저항에 부딪힐 것”이라고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왜 만드나 마나 한 법이 될 것이라고 보나.

“그동안 공직자와 일반인이 거액을 주고받아도 ‘대가성이 없다’면서 처벌하지 않는 사례가 많았다. 직무와 관련 없는 사업가가 조건 없이 몇 년 동안 밥을 사고 술을 사다 나중에 청탁을 했다 치자. 적발되더라도 대가성이 인정되지 않아 뇌물죄로 처벌할 수 없다. 그래서 일명 ‘스폰서’를 막기 위한 법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거다. 그럴 소지를 근본적으로 차단해야 한다.”

―권익위는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한다’는 원칙은 유지했다고 하는데….

“직무 관련자로부터 금품을 받은 경우에 한해 대가성이 없어도 처벌한다는 것이다. 대법원 판례를 보면 직무 관련성이 있는 사람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경우 대부분 자동적으로 대가성도 있는 것으로 인정해 뇌물죄로 처벌하고 있다. 수정안대로 법을 만들 경우 처벌할 수 있는 행위는 지금의 뇌물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럴 거면 굳이 (법무부와) 싸워가면서 법을 만들 필요가 뭐가 있나.”

―법무부는 ‘김영란법’ 원안에 대해 ‘공직자에 대한 과잉처벌’이라며 반대했는데….

“공직이란 특수한 지위다. 공직자가 일반인보다 행동에 제한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법무부 주장은 이해할 수 없다.”

―공직자의 금품수수 행위를 징역이나 벌금형으로 형사처벌하는 내용이 삭제되고 대신 받은 금품가액 5배 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하는 행정벌로 완화했는데….

“위원장 시절 그 점에 대해서는 양보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어떤 형태로든 단죄가 중요하다. 전과기록이 남는 형벌인지, 행정벌인 과태료인지는 중요하다고 생각지 않는다.”

장원재·권오혁 기자 peacechaos@donga.com
#김영란#비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