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의 특사 최룡해 북한군 총정치국장이 24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6자회담’ 카드를 내놓음에 따라 한반도 정세가 대치국면에서 대화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최룡해가 거론한 ‘적극적 행동’은 비핵화 논의에 협조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시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음에도 최룡해가 비핵화에 대해선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는 점에서 실제 대화 복귀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을 것으로 한국 정부는 보고 있다. 북한의 태도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 그 어느 때보다 한국 정부의 전방위 외교, 즉 코리아 이니셔티브 디플로머시(KI-디플로머시)가 절실한 시점이 온 것이다.
○ “6자회담 복귀 의사 밝힌 건 긍정적”
최룡해는 시 주석에게 김정은의 친서를 전달하면서 ‘6자회담 등 다양한 형식의 대화와 협상을 통해’ 관련 문제를 ‘적극적인 행동으로’ 해결하길 원한다고 밝혔다. 내용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김정은의 친서엔 더 구체적인 대화 복귀 약속이 담겼을 것이란 관측이 많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김정은이 시 주석에게 대화 복귀를 약속했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라고 말했다. 북한이 핵보유국을 자처하면서 비핵화 회담엔 나서지 않겠다고 주장해 온 상황에서 북한 최고지도자인 김정은이 비핵화 협상인 6자회담의 장으로 돌아올 ‘적극적 행동 의사’를 밝힌 건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북한이 “실제적 행동을 통해 한반도의 긴장 국면을 완화해야 한다”는 압박을 수용한 셈이어서 중국의 위신은 일단 살았다. 시 주석은 다음 달 초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의 미중 정상회담과 다음 달 말 박근혜 대통령과의 한중 정상회담에서 북한의 메신저, 비핵화의 중재자, 6자회담 의장국임을 강조하면서 북한의 대화 복귀 의사를 전하고 6자회담 재개를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그리고리 로그비노프 6자회담 차석대사는 이날 “북한이 협상 테이블로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건 긍정적인 평가를 받을 만하다”며 환영 의사를 나타냈다. 북-중-러가 한국과 미국에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을 압박하는 전선을 형성하는 모양새가 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 비핵화 강조한 시진핑에 입 다문 최룡해
그러나 정부 고위 관계자는 “최룡해가 하지 않은 말도 주목해야 한다”며 “시 주석이 한반도 비핵화를 강조했음에도 최룡해는 비핵화를 하겠다는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특사외교로 북-중 간 불협화음을 봉합하는 모양을 취하긴 했지만 비핵화를 둘러싸고 이견을 노출했다고 볼 수 있는 셈이다. 3차 핵실험 이후 중국까지 북한을 압박하자 고립 위기에 처한 북한의 립서비스일 수도 있다.
정부의 다른 당국자는 “북한은 비핵화 회담 이탈과 복귀를 협상 카드로 이용해 왔다”며 “이번에도 6자회담 복귀를 카드로 활용해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전략일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북-미 간 ‘2·29합의’ 파기 이후 북한에 극도로 실망한 미국은 대화 복귀에 보상은 없으며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진정성 있는 행동을 취해야 대화가 가능하다는 강경한 입장이다.○ 한국, 전방위 외교가 필요하다
결국 공은 한국과 미국에 넘어온 셈이다. 북한의 대화 복귀 의사를 환영하는 중국 러시아와 북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한 한국 미국 사이에 이견이 노출되면서 갈등이 불거질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 중국이 북한의 6자회담 복귀 의사를 적극 평가해줌에 따라 한미 양국은 중국에 강력한 대북 제재를 유지해 달라고 요구하기 어려워졌다. 북한이 이렇게 중국을 다시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한미중 공조를 분열시키고 분란을 야기하면서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노림수로 특사외교를 펼쳤을 것이라는 지적도 많다. 대화는 재개되지 않고 제재만 약화된다면 이것이야말로 북한이 노리는 시간벌기를 통한 핵 보유 굳히기 전략이 되는 셈이다. ○ 애 먹인 중국, 군복 벗은 최룡해
중국은 이번 특사단을 맞는 과정에서 홀대까지는 아니더라도 환대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보여줬다. 우선 최룡해와 시 주석 간 만남이 24일 당일까지도 최종 확정이 안 됐던 것으로 추정된다. 최룡해는 이날 오전에 잠깐 중앙군사위원회 판창룽(范長龍) 부주석을 만난 것을 빼고는 내내 숙소인 댜오위타이(釣魚臺)에 머물며 오후 3시 넘어서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이 때문에 예방이 불발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돌았다. 이 과정에서 오후 5시 출발로 예정됐던 고려항공 특별기는 7시로 연기됐지만 이마저도 제때 출발하지 못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중국 측이 고의로 애를 먹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날 시 주석을 만나러 인민대회당에 나온 최룡해는 그동안 입었던 군복 대신에 북한 인민복을 입고 나왔다.
최룡해가 전날 상무위원 가운데 서열 3위이자 한반도통인 장더장(張德江) 대신 외교·안보와 거의 상관이 없는 류윈산(서열 5위)을 만난 것도 중국의 북한 길들이기 일환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