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워 또만나/반또 칼럼]카톡족들 ‘창조거절 시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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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민? 불치병? 종교 귀의? 거짓말은 다 보여!

#그 남자

“주말에 영화나 보자고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냈더니 ‘갑자기 1년간 해외 지사로 발령 나서 급하게 출국해야 한다. 정말 죄송하다’라고 답이 왔어요. 저 어떻게 하죠?”

평소 즐겨 찾는 온라인 커뮤니티에 남자는 최근 고민 상담을 털어놨다. 소개팅으로 만난 그녀의 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를 묻는 글이었다.

훈훈한 위로와 해결법을 기대했던 것과 달리 댓글 반응은 냉철했다. “새로운 거절 방식이네요.” “갑자기 중동으로 이민 간다는 제 소개팅녀보단 낫네요.”

#그 여자

“최근에 만난 소개팅남에게 자꾸 밥 먹자고 연락 오는데 솔직히 별로라서…, 제가 거절을 잘 못하는 스타일인데 어떻게 해야 싫은 소리 안 들을까요?”

여성들이 즐겨 찾는 한 온라인 패션 동호회 사이트에 여자는 ‘연애 박사님들에게 의견 구합니다’라는 글을 남겼다.

‘연락하지 말라’는 식의 평범한 조언 대신 기발한 아이디어가 이어졌다. “학창 시절부터 의대 진학을 꿈꿔 왔는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도전하겠다고 해보세요.” “수녀가 되겠다고 말하는 건 어때요?”

봄, 누군가에겐 추운 겨울보다 더 시린 시간일지 모른다. 좋아하는 마음을 표현했는데 돌아오는 답은 ‘황당’ 그 자체라면 말이다. 상처는 주기 싫고, 나쁜 사람은 되기 싫고, 그래서 이 시간에도 포털사이트에는 ‘소개팅 애프터 거절하는 법’에 대한 질의응답이 실시간으로 업데이트 되고 있다. 타고 가던 차가 트럭에 부딪혀 입원했다는 식의 ‘돌발사고형’부터 대학 진학이나 종교 귀의 등 ‘숙원사업 매진형’, 불치병이나 부모님 위독 등 ‘가족사형’, “휴대전화 수신이 잘 안 된다”며 2, 3일에 한 번씩 답을 주는 불통형 등 방법은 다양하다.

갑자기 이민을 가고, 불치병에 걸리고…. 창조 경제, 아니 ‘창조 거절’ 시대다. 상대방이 상처를 입지 않을까 우려하는 배려일까, 아니면 싫다고 말하는 마음의 부담조차 지기 싫은 무성의와 게으름일까.

편지에서 문자메시지, 스마트폰 메신저…. 소통 도구는 갈수록 간편하고 간단해진다. 인간관계 정리 역시 쉬워졌다. 다른 핑계를 대거나 차단을 하면 된다. 그래서 더 무성의해 보인다. 우리, 서로 다시 볼 일은 없는 사람들 아냐? 그런데 뭐 이유가 중요하겠어. 이 핑계가 사실인지 네가 확인할 수 있어?

최근 이런 식으로 ‘창조 거절’을 당한 기자의 지인은 “작은 화면으로 뻔히 보이는 거짓말을 보고 있으려니 오히려 기분이 더 나빴다”고 말했다. 인연이 아니면 아니라고 말해주는 게 ‘인간에 대한 예의’ 아닐까 싶기도 하다. 사람은 보다가 꺼버리면 그만인 TV 채널이 아니니까.

김범석 기자 bsism@donga.com
#반가워 또만나#창조거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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