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장의 방중으로 최근 단절돼 있었던 북-중 고위급 교류가 물꼬를 트면서 양국 간의 관계 개선 및 이를 바탕으로 한 한반도 정세의 변화 계기는 일단 마련됐다.
그러나 이런 움직임이 곧바로 대화 국면으로의 전환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다. 한미 당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북한과의 대화 재개 조건으로 요구하는 ‘비핵화 사전조치’에 대해 아직 북한이 아무런 답을 내놓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 ‘비핵화’ 언급 피하는 북한
조선중앙통신을 비롯한 북한 매체들은 25일 최룡해의 방중 사실을 보도하면서 북-중 우호관계를 강조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대화 복귀’ ‘비핵화’ ‘6자회담’ 등의 단어는 소개조차 하지 않았다. 총련 기관지 ‘조선신보’는 최룡해가 방중 기간 군복을 입은 것과 관련해 “위풍당당한 군복 차림의 특사 일행은 궁지에 몰린 약한 모습이 아니었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더구나 북한은 이날 처음으로 박근혜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해 비난하며 ‘핵과 경제 개발 병진’ 노선을 고수했다는 점에서 벌써부터 대화의 진정성을 의심받는 상황이다. 민주당도 26일 박 대통령에 대한 북한의 원색적 비난에 대해 “부적절하다”고 비판했다.
한미 당국은 북한이 다시 대화 테이블에 나오려면 최소한 비핵화 사전조치 등을 통해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는 태도를 고수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해 미국과의 2·29합의 당시 △추가 핵실험 및 미사일 발사 모라토리엄 △영변의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찰단의 복귀 등에 합의한 바 있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의미하는 대화가 그동안 주장해온 군축 대화나 평화협정 체결 협상에 국한될 수 있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섣불리 북한의 대화 제의를 받아들였다가는 ‘위협 후 대화공세 전환’이라는 패턴을 반복하며 핵개발의 시간을 벌어온 북한의 전략에 다시 말릴 수 있다는 경계심도 어느 때보다 강하다.
외교부 고위 당국자는 “북한의 진의가 무엇인지 확인하기 전에는 대화 국면으로의 진입을 섣불리 예단할 수 없다”며 “탐색전이 길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핵 문제에 정통한 외교소식통은 “당장 북한과의 대화 재개는 어려울 것”이라며 “지난해 4∼12월과 같은 ‘유사 안정(phony-stability)’ 상태가 다시 지속될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지난해 4월 미사일 발사에 실패한 이후 같은 해 12월까지 북한의 추가 도발과 협상 테이블로의 복귀 가능성이 동시에 거론되며 각종 억측을 낳았던 때와 비슷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시동 걸리던 ‘한미중’ 삼각 협력 어디로?
애매모호한 북한의 대화 언급으로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대북 공조만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중국은 최룡해의 방북에 대한 성의 표시 차원에서 옥수수 등 곡물을 지원하는 것 외에 북한이 주장하는 전승기념일(7월 27일·정전협정 체결일)에 추가 지원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이와 함께 대북 제재를 완화해주며 기존의 ‘한미 vs 북-중’의 구도를 재연하게 되면 최근 시동이 걸리는 듯했던 ‘한미중’의 3국 협력이 흔들릴 수밖에 없다.
정부는 다음 달 말 한중 정상회담이 예정돼 있는 만큼 북한과의 대화를 모색하게 된다고 해도 제재는 약화시키지 않는 ‘강화된 투 트랙’을 유지할 수 있도록 중국에 협조를 요청하는 등 외교적 단속에 나설 방침이다.
외교부 당국자는 “한미가 한쪽 편에, 북한이 그 반대편에 서 있다면 중국은 현재 그 중간 어디쯤 위치해 있다”며 “중국이 북한을 비핵화 협상까지 끌어낼 수 있도록 주변국들이 계속 설득하고 외교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숙 유엔주재 한국대표부 대사도 23일 언론 합동 인터뷰에서 “중국은 북한이 (도발을 중단하라는) 자신의 설득에 정면으로 도전한 데 대해 모멸감을 느꼈다”고 전했다. 중국이 과거와 달리 쉽사리 북한에 대한 강경한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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